양윤영
梁允永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선천 성별 여
생년월일 1910.5
[정의] 이화여대 음악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성가 ‘맹세’ 등을 작곡한 원로.
[내용] 1910년 5월 평안북도 선천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조부가 목사 양호식이었고, 백부 양전백 목사는 3·1운동의 33인 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1937년 3월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뒤 평양 정의여고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일본 우에노학교에서 3년 동안 성악을 공부하고 1942년 3월 일본 동경 군인회관에서 독창회를 개최하였다. 귀국 후 보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2년 33세에 은행지점장을 만나 결혼하였다. 유복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였으며, 전쟁에서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1952년 4월 이화여대 음악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53년 10월 동생 양윤신의 인도로 참아버님을 만났으며, 1954년 4월 유효원의 원리강의를 듣고 입교하였다. 입교 후 박마리아와 김활란 등에게 말씀을 전하고 한충화, 유경규, 오승택 등을 전도하였다. 1955년 3월 이화여대에서 퇴직당했으며, 1956년 성가 ‘맹세’ 등 여러 성가를 작사 작곡하기도 하였다. 1959년 3월 창단한 영성합창단을 이끌었으며, 참부모님으로부터 ‘音樂成道 地興樂天(음악성도 지흥악천)’이라는 휘호를 하사받았다. 1964년 10월 전국 순회 원리대강연회에서 강사로 활약했다. 1998년 9월 30일 성화하였다.
☞ ‘양윤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