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나시우스주의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아타나시우스의 사상이나 이론.
[내용]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는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교부(敎父)이며 성인이었다. 아리우스와는 반대되는 삼위일체설을 주장했다. 젊은 시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가까이 하며 그리스적 소양을 쌓았다. 325년에 주교 알렉산더를 따라 니케아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의 이단설을 날카롭게 논파함으로써 명성을 얻었으며, 이듬해 알렉산더 주교가 죽자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되어 46년간 봉직했다. 니케아공의회 후에도 강대한 세력을 유지한 아리우스파의 공격 표적이 되고 복잡한 교회 정치의 상황까지 겹쳐 주교 재직 중에 5회, 전체 17년 동안 추방이나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335년에는 라인랜드(Rhineland)에 있는 트리에르(Trier)로 추방(1차)되었으며, 339년에는 다시 로마로 추방(2차)되었다. 2차 추방은 로마교회와 아타나시우스주의가 결합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교 또는 추방된 유랑자로서의 다망한 삶에도 불구하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약년의 『애육론(愛肉論)』과 주교 재직 중에 정리한 『아리우스파 반박론』이 주저이다. 아리우스파의 종속주의적 그리스도론에 대항하여 평생 니케아신조를 지켰으며,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육화(肉化)된 하나님의 로고스로 보며, 따라서 성부인 하나님과 성자인 그리스도는 동질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성령의 신성도 성부와 동질임을 주장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을 완성했으며, 이 입장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정통이 되었다. 4세기 기독교 교회사의 대부분은 아타나시우스의 공적 활동과 중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아리우스파에 대항하며 아타나시우스 혼자서 그리스도교를 이교적 합리주의의 혼란에서 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