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CHEONWONSA

검색 서비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dictionary_pt1-1351

세례 요한

洗禮요한 / John the Baptist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직접 증거하고 모시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으나 예수님을 불신하여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불신하게 만든 예언자.

[내용] 출생과 성장

세례 요한이라는 명칭은 세례를 주는 자 요한이라는 뜻으로서 사도 요한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명문가인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가랴가 지성소에서 분향할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가랴는 자신과 아내가 나이가 많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것으로 인해 사가랴는 그때부터 벙어리가 되었다가 세례 요한이 출생하여 이름을 지을 때, 그 입이 열렸다. 이 기사이적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이 크게 놀랐고, 세례 요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종사촌 언니였다. 마리아가 자신을 통해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소식을 듣고 순종하며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복중에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있던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어머니 쪽으로 사촌 형제로서 가인과 아벨의 관계였으며, 세례 요한이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야 복귀섭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수도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때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 세례를 주면서 장차 강림할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기 시작했다.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제사장들까지도 그에게 메시아가 아닌가를 물어볼 정도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존경을 받았다.

엘리야의 재림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세례 요한의 사명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메시아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사탄을 분립하여 예수님을 위한 기반을 준비하며, 예수님을 직접 증거하고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역시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장차 예수님이 강림할 때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하면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려면 그의 강림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이 장차 강림할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다.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멸하는 등 사탄 분립의 역사를 하고 승천했다.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다.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준비하기 위하여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다.

가브리엘 천사는 사가랴에게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누가복음 1:15-17).”라고 예언했다. 또한 부친 사가랴도 세례 요한에 대해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누가복음 1:76-77)라고 예언했다.

세례 요한의 섭리적 사명과 실패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 기대를 세워야 하는 중심인물로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워야 했다. 그가 세운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예수님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하고, 이스라엘을 메시아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의미였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충효의 도리를 세우며 40수 사탄 분립기대를 완성했다. 이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그를 혹시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세례 요한을 존경하고 따랐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세례 요한은 동시에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 곧 아벨의 입장을 확립했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진 아벨의 입장에 있는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이 세워지게 되어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 기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믿고 모시고 따르기만 하면, 예수님은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 기대 위에 서서 구약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의심하여 따르지 못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로 왔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불신하고 배반하는 입장에 서게 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이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어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여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인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제3차 영적인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예수님이 먼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서야만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세례 요한의 불신과 그 결과

세례 요한은 자기가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받은 자임을 자각하고 있었고, 예수님 위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모시고 따라야 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세례 요한을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고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다.

예수님 당시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에 앞서 먼저 온다고 예언된 엘리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야는 오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선포하자 혼란이 일어났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였으나,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더 신뢰하여 결국 예수님을 불신하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가 바로 엘리야라는 것을 선포했으면,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엘리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믿고 모두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것이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예수님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의 지혜로 알았어야 했으며, 설혹 그 사실을 몰랐더라도 메시아로 증거한 예수님이 자기를 엘리야라고 말씀하였다면 자기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가 바로 엘리야라고 뒤늦게라도 선포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증언을 부인했으며 섭리적인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세례 요한은 영적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계시 받아 증거는 하였으나 결국 스스로 인간적인 관점에 갇혀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이종사촌이었으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인간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예수님을 불신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심판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태복은 11:6)라고 한 것은 세례 요한이 실족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태복음 11:11)고 한 것은 세례 요한이 실족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바쳐야 할 목숨을 섭리적으로 별로 의미 없는 일로 인해 잃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모시지 못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가게 된 큰 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