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聞慶새嶺
항목체계 성지
소재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정의] 참아버님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남하하면서 넘었던 고개로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10대 성지 중 한 곳.
[내용] 참아버님이 한국동란 중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남하하면서 다리가 불편한 제자(박정화)를 동반해 힘겹게 넘은 고개로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10대 성지 중 한 곳이다. 10대 성지는 흑석동, 범냇골, 청파동 전본부교회, HJ천주천보수련원, 파주원전, 청해가든, 충의애관, 계룡산 갑사, 문경새재, 야목교회이다.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높이는 642미터고, 마역봉(920미터)과 깃대봉(835미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1966년에는 문경 조령관문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고, 1981년에는 이 일대가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또 2007년에는 문경새재가 명승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새재 또는 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령(鳥嶺)이라 하지만 세상에서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새재는 새나 넘나들 수 있는 험한 고갯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졌고, 초점은 풀이 우거진 고갯길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넘기가 힘들다는 의미이다.
참아버님은 1950년 12월 4일 평양을 출발하였다. 21일 임진강을 건너고 문산역을 거쳐서 12월 27일 학창시절에 머물던 서울 흑석동에 도착해 친구 곽노필의 집에서 잠시 기거하였다. 그러나 불심검문으로 파출소에 연행돼 군대 징집을 위한 신체검사까지 받았으나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면제판정을 받았다. 이 사건은 후에 서대문형무소 수난 당시에 징집을 피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배경이 되었다.
1951년 1월 3일 서울 전역에 피난 퇴거령이 내려져 다음날 서울을 출발해서 성남, 장호원, 원주, 제천, 단양, 충주 용천, 수안보, 문경새재, 의성, 영천, 경주, 울산 등을 거쳤다. 참아버님 일행은 서울을 떠난 지 24일 만인 1951년 1월 27일 부산 초량역에 도착하였다.
문경새재는 1,075미터의 조령산(鳥嶺山)이 버티고 있는 멀고 험준한 고갯길이다. 그 길은 옛날에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길로서 교통의 요지였다. 참아버님은 또 다른 제자와 함께 박정화를 자전거에 태워서 끌거나 밀면서, 또는 업고서 천신만고 끝에 가파른 고갯길을 넘었다. 많은 식구들이 남하 당시의 참아버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한 성지로서 문경새재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