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지도자.
[내용]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며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基臺)’를 세워야 하는 섭리의 중심인물이자 장차 예수님이 걷게 될 노정을 미리 개척하는 모의자(模擬子)로서의 사명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러한 섭리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세에게는 이집트에서 온갖 고초를 겪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해 모세는 그 당시 사탄 세계의 중심인 파라오의 궁중에서 40년을 지내며 믿음의 기대를 먼저 세웠다. 사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파라오가 이집트에서 태어나는 히브리인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누나 미리암은 모세를 살리기 위해 그를 갈대상자 안에 넣어 강가에 띄웠고, 이를 발견한 이집트의 공주가 모세를 양자로 받아들였다. ‘모세’라는 이름은 강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으로 공주가 지어 준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는 미리암의 소개로 모세의 유모로 들어가 모세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모세에게 교육하였다. 모세는 이집트 왕족으로 지내면서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와 충절을 갖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을 결의하였다. 이러한 파라오 궁중 40년 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믿음의 기대 위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할 수 있는 실체기대를 세울 수 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 복지로 돌아갈 때까지 가인의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던 모세와 완전히 하나 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동포가 심한 노역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이집트인 감독을 죽이고 말았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하나 되어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끔 이끄는 섭리였다. 하지만 이때에 이스라엘 민족은 오히려 모세를 비난함으로써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나왔지만,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에서의 힘든 생활을 버티며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운다는 것은 매우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결국 2차와 3차까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연장되었다. 제3차에 이르러 모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메시아를 상징하는 반석을 지팡이로 쳐 물을 내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려 하였지만, 계속 불평만 하던 그들을 보고 혈기를 누르지 못해 한 번 쳐야 할 반석을 두 번 치고 말았다.(민수기 20:11) 이는 장차 실체 반석으로 와서 만민에게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해 줄 예수님을 사탄이 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기 때문에 죄가 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모세는 일생 동안 바라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섭리의 중심인물은 여호수아로 이어졌다.
☞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 ‘여호수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