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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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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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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리치

利瑪竇 / Matteo Richi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소속으로 최초의 중국 교회를 세운 선교사.

[내용] 마테오리치는 155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레타(Macerata)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1571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다음해 예수회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과 철학을 비롯해 천문학, 수학, 지리, 역법 등을 수학하고 극동선교를 자원해 1577년 로마를 떠났다. 리치는 인도 고야에서 서품을 받고, 1582년 정식 중국 선교사로서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그 뒤 중국의 언어와 문화 및 풍속을 익힌 후 중국 광동성에서 선교를 시작해 첫 교회 선화사(仙花寺)를 세웠고 1595년 난징, 1601년 베이징에 진출하여 구태소, 서광계, 이지조, 이탁오 등 고관·문인들에게 서양의 천문, 지리, 수학 등을 가르치며 교류하였다. 명의 황제 만력제를 알현했을 때 자명종과 대서양금 등 서양기기를 선물해 신임을 얻었다. 즉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포교의 수단으로 삼아 선교의 입지를 다졌다. 또한 리치는 이마두(利瑪竇)라는 중국 이름을 사용하고 공자의 숭배와 조상숭배를 중국의 전통문화로 인정하며 하나님(天主)을 중국의 ‘상제(上帝)’개념으로 번역하는 등 유교적 개념을 통해 가톨릭 교리와 신앙을 전교하는 적응주의적, 보유론적 전교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마테오리치의 선교는 당시에 상류층의 호감을 사서 교회를 세우고 단기간 천여 명의 세례 신자를 배출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그가 저술하거나 번역한 『천주실의(天主實義)』(1595), 『교우론』(1595), 『이십오언(二十五言)』(1604) 등 다수의 한역 교리서와 서적들은 한자 문화권으로의 기독교 선교에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마테오리치는 중국 최초의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도 제작했으며 유클리드의 『기하원본(幾何原本)』과 『측량법의(測量法義)』 등 서양의 과학서적을 중국 문인들과 공역하는 한편 유교경전인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등 27년간 중국에 머물며 동서의 문화교류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테오리치는 1610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나 베이징에 묻혔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단에 의해 천문서와 역산에 대한 번역서, 서양지도, 『천주실의』, 『교우론』 등 마테오리치의 한역교리서와 서학서적들이 유입되어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서학이 형성됐고,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수용한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