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화
金周華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 성별 여
생년월일 1922.12.17
[정의] 정부의 보건사회부에서 일하다 입교한 초창기 원로.
[내용] 김주화는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하고 정부의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입교했으며 교회 개척자, 순회사, 목사 등을 역임하고 독일인과 특별 축복을 받은 원로이다.
192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성장하였다. 모친은 서양화가 나혜석의 동생으로 예술적 가문에서 성장하여 성악을 전공하고 도쿄에 유학까지 갔으나 병을 얻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집에서 야학을 하며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서며 영창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열심을 다하였다. 평양공립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음악과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나 평소 아끼던 두 동생이 한국동란 중에 사망하는 사건을 겪으며 신앙적으로는 방황을 많이 하였다. 이화여대 졸업 후 보건사회부 부녀국에서 근무하던 중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유효원이 통일교회에서 강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일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1955년 통일교회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확신을 가졌으며 영적인 체험으로 더욱 결심을 굳혔다. 보건사회부에서 유학을 보내 주는 계획이 세워졌는데, 그 중의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밝혀져 외국에 나갈 기회도 없어지고 사직을 강요당했다. 직장과 교회 중 선택하라고 하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자랑스럽게 직장을 그만두었다. 1957년 장충공원에서 노방전도활동을 펼치는 것을 시작으로 경북, 강원, 경기, 전남 등에서 공직활동을 하였고 전국 순회 임무를 맡아 헌신하였다. 참자녀님을 비롯하여 축복가정 자녀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카인 김기훈이 축복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를 시작하여 큰 기쁨을 주었다. 1980년 58세가 되던 해에 참부모님의 특별 은사로 독일인 오토 반더(Otto Wanlder)와 축복결혼을 한 뒤 1983년 독일로 건너가 가정을 이루었다.
☞ ‘김기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