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基督論 / Christolog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7장으로서 예수님의 본성과 사명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
[내용]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
예수님의 가치를 알려면 먼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 첫째로 하나님과 완성된 인간의 이성성상적인 관계로 보면, 완성된 인간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갖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서 마음과 몸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과 완성된 인간은 이성성상적인 관계이며, 이 관계는 인간의 마음과 몸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무형의 마음을 닮아 그의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것이 몸인 것과 같이 무형의 하나님을 닮아 그의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완성된 인간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가 될 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완성된 인간이 사위기대를 이루어서 일체가 되면,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을 완전히 체휼하는 생활을 하게 되므로 그 관계는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이 항상 임재하는 성전이 되어 신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온전한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갖는다.
둘째로 인간 창조의 목적을 중심하고 보면, 완성된 인간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갖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을 통하여 기쁨을 누리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딴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특성을 각각 지니고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수가 아무리 많이 번식되더라도 개성이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내재하고 있는 어떤 개성체의 주체적인 이성성상에 대한 자극적인 기쁨을 상대적으로 일으켜 주는 실체대상은 그 이성성상의 실체로 전개된 한 개체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누구든지 온 천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셋째로 인간과 피조세계의 관계로 보면, 완성된 인간은 천주적인 가치를 갖는다. 인간은 영인체로는 무형 세계, 육신으로는 유형 세계를 각각 주관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전 피조세계의 주관자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육신과 영인체가 있어서 유형과 무형의 두 세계를 주관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 두 세계는 인간을 매개체로 하여 서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실체대상의 세계를 이루게 된다. 인간의 이성성상을 실체로 전개한 것이 피조세계이다. 인간의 영인체는 무형 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며, 육신은 유형 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천주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여기에 하나의 완전한 기계가 있고, 이 기계의 모든 부속품들이 하나씩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구할 수 없고 만들 수도 없다면 그 하나하나의 부속품은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이라도 전체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완성된 인간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미미한 것 같다고 하더라도 온 천주적인 가치와 대등한 것이다.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과 예수님
인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를 역사 종말의 세계에서 복귀하여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복귀섭리의 역사이다. 아담이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었다면 창세기 2장 9절의 생명나무가 되어 그의 후손도 모두 다 생명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여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소망은 바로 이 생명나무로 복귀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자신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생명나무로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창조이상을 완성한 한 남성이 생명나무로 와서 만민으로 하여금 그에게 접붙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남성으로 온 분이 예수님이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로 상징되어 있는 완성한 아담이나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생명나무로 비유된 예수님은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라는 입장에서 서로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가치에서도 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완성된 인간은 하나님이 온전한 것과 같이 온전하여서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진 가치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므로 실체대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도 역시 완성되면 영원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완성된 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전 피조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가 없이는 천주의 존재가치도 온전해질 수 없다. 따라서 완성된 인간은 천주적인 가치의 존재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가치를 가진 분이다. 예수님이 지닌 가치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은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가지는 가치 이상의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온 분이었다. 다만 완성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라는 의미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은 가능하다. 동시에 예수님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이라고 해서 그의 가치가 격하되는 것은 아니다. 완성된 창조본연적인 인간의 가치가 예수님의 가치와 동등한 입장으로 끌어올려지는 것이다. 메시아는 인류를 중생시켜 주어야 할 참부모이므로 인간으로 와야 했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일체였기 때문에 그의 신성으로 보아 그를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마음과 몸의 관계로 비유하여 생각할 수 있다. 몸은 마음을 닮아 난 실체대상으로서 마음과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제2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몸이 마음 그 자체는 아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제2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 자신은 아니었다. 예수님을 본 것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체라는 뜻이었다.
피조세계는 개성을 완성한 인간의 성상과 형상을 실체로 전개한 것이기 때문에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피조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며, 그는 화동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 세상은 완성된 인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완성되면 그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여하여 그로 하여금 만물세계에 대한 창조주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 주고자 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말씀의 의미이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지만, 그는 전 인류를 중생시켜 주어야 할 인간조상으로 강림했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선조가 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 이전에 있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님은 지상에 있어서도 원죄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인간이었고, 또 부활 후 영계에서 제자들과 다름없이 영인체로서 존재한다. 다만 제자들은 생명체급의 영인으로서 빛의 반사체로 있으며, 예수님은 생령체급의 영인으로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발광체로 있다는 것이 다르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영계에서 지상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한다.
타락한 인간과 예수님
타락한 인간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를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자기보다 저급하게 창조된 천사를 우러러볼 정도로 천한 자리에 떨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므로 천사를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타락한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으므로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죄가 없었기 때문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심정을 알 수 없다. 혹시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고 그 심정을 체휼하는 자리에서 생활했다.
따라서 인간은 타락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이지만 중생하여 원죄를 벗고 선의 자녀가 되면 예수님과 같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 사회의 부자간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연의 가치에는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중생론과 삼위일체론
아담과 해와가 창조이상을 완성하여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다면, 그들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은 원죄가 없는 선한 자녀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하여 인류의 악의 부모가 되어 악한 자녀들을 번식하여 지상지옥을 이루었다. 타락한 인간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을 원죄가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 선한 부모는 하늘로부터 강림해야 한다. 그러한 사명을 갖고 강림한 초림 메시아가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타락한 자녀를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지상천국을 이룩하기 위하여 참아버지로 온 분이었다. 예수님은 아담이 이루지 못하였던 참아버지로 왔으므로 후 아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 혼자 자녀를 낳을 수 없다. 타락한 자녀를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려면 참아버지와 함께 참어머니도 있어야 한다. 초림 메시아 예수님과 함께 죄악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다시 낳아 줘야 했던 참어머니가 성신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성신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였던 것이다. 성신은 참어머니로 후 해와의 역할을 하므로 여성 신으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로고스는 헬라어로서 말씀 혹은 이법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로고스를 먼저 세우고 이에 입각해 피조세계를 창조했다. 로고스의 주체인 하나님이 이성성상으로 존재하므로 로고스도 이성성상으로 세워졌으며, 로고스에 의해 창조된 피조세계도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로고스의 이성성상이 하나님의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것이 아담과 해와였다. 아담이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 곧 생명나무가 되고 해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표시된 창조이상을 완성한 여성이 되어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더라면 그때에 하나님의 3대 축복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반대로 지상지옥이 되었다. 타락한 인간을 다시 낳아 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후 아담으로서 생명나무의 사명을 가지고 인류의 참아버지로 강림했다. 성신은 타락한 인간을 다시 낳아 주는 후 해와의 사명을 가진 인류의 참어머니로 강림했다.
부모의 사랑이 없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성신의 감동에 의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적 참아버지인 예수님과 영적 참어머니인 성신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영적 참부모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주입되어 새로운 영적 자아로 중생하게 된다. 이것을 영적인 중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영육 아울러 타락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육적 중생을 함으로써 원죄를 청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인 중생에 의한 육적인 구원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재림해야 한다.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삼대상목적을 이룬 사위기대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진다. 그 목적을 이루려면 예수님과 성신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으로부터 실체로 분립된 대상으로서 서로 수수작용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과 성신이 일체가 되는 것을 삼위일체라고 한다.
만일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참부모로서 삼위일체를 이루어 선의 자녀를 번식하였다면, 그들의 후손들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부부를 이루어 각각 삼위일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삼위일체가 되었고, 그들의 후손들도 역시 사탄을 중심한 삼위일체를 형성하여 타락한 인간 사회를 이루어 놓았다.
하나님은 후 아담 예수님과 후 해와 성신을 영적인 참부모로 세워서 타락한 인간을 영적으로 중생케 하여 그들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한 영적인 삼위일체를 이루게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을 중심한 실체적인 삼위일체를 이루어 영육 아우른 참부모가 되어 타락한 인간을 영육 아울러 중생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실체적인 삼위일체가 되게 하기 위하여 재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