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사상
開闢思想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근대 한국 민족종교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낡고 어두운 선천시대가 끝나고 후천의 태평성세,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혁세적 미래 대망 종교사상.
[내용] 개벽사상은 천지(세상)의 시작을 의미하는 개벽, 즉 우주적 일대 변화가 일어나 이전의 낡고 혼탁한 선천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밝고 공명정대한 후천시대가 열린다는 혁세적 미래 대망의 종교사상이다. 태평성세의 이상세계가 열리는 새로운 시작을 후천개벽이라고 하므로 후천개벽사상이라고도 한다.
개벽사상은 음양오행과 주역, 상수학에 따라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순환적 역사관, 선후천의 교역 등 시운의 변화에 따른 왕조의 흥망성쇠와 사회변화를 점치는 운세관, 원시반본 등 동양의 전통적 관념과 사유구조를 사상적 자원으로 하며 내우외환이 심화된 구한말 새로운 이상세계의 도래를 염원하던 미래 대망 사상으로 확립되었고 동학, 증산교, 원불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등 근대 이후에 출현한 한국 민족종교운동과 신(新)종교들의 특징적 종교사상으로 발전하였다.
한국 민족종교의 효시인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은 종교체험에 근거하여 ‘다시 개벽’을 주창하였다. 1881년 『용담유사』에서 수운은 지금이 괴질운수에서 빠진 세상을 국태민안의 태평성세, 이상사회로 전환하는 다시 개벽의 때라고 선언했다. 동학의 다시 개벽의 사상은 모든 종교가 근원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는 원시반본(原始返本),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새로운 후천시대가 ‘다시 개벽’되며, 그 중심이 한반도와 한민족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서세동점의 시대에 풍전등화의 국운과 탐관오리의 횡포 속에서 신음하고 고통 받던 백성들에게 새로운 민족적 긍지와 정체성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개벽사상은 동학농민운동이나 천도교의 항일민족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고, 이후 한국 민족종교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김일부(金一夫)는 천문과 역산에 대한 오랜 공부와 수도 끝에 1881년 신비한 득도의 경험으로 『주역』의 괘와 다른 정역팔괘도를 환각으로 받아 그렸다. 그 후 주역을 바로잡는 『정역(正易)』을 지어 개벽사상의 이론적 근거와 논리적 체계를 제시하였다. 『주역』은 선천 역, 『정역』은 후천 역으로서 윤역이 있는 주역의 불완전한 천지운행도수 때문에 극한극서와 자연재해가 초래하므로 천지운행의 잘못된 도수를 정역(正易)으로 일월궤도와 운행이 바로잡는 후천시대에는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음양의 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도 사라지는 이상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김일부는 역을 바로잡음으로써 천지운행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적극적 실천과 함께 인간의 마음을 바로잡는 신명개벽도 주장하였다. 이는 이후 강일순의 증산교를 중심한 신비주의적 개벽종교운동뿐만 아니라 박중빈(朴重彬)이 전개한 원불교를 중심한 종교운동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1901년 천지대도를 깨달아 성도하고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은 당대 널리 퍼진 동학의 개벽사상과 『정역』의 적극적이고 실천적 개벽의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무력항쟁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동학운동의 전철을 피하고자 개벽사상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였다. 증산교의 개벽사상은 천(天)·지(地)·인(人)의 삼계(三界)를 개벽하는 것, 곧 천지공사를 행하는 우주적 신비주의적 개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강증산은 구천상제로서 삼계대권을 지니고 내려와 천지공사를 통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어’ 세상을 구함으로써 동학이 주창한 개벽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승려로서 불교 수도의 기반에서 1916년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은 소태산 박중빈도 이러한 개벽사상의 맥을 이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로 종교적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종교운동으로 원불교를 창교하였다. 원불교는 서구에서 발전한 물질문명이 정신문명의 쇠퇴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물질개벽의 시대에 맞는 정신의 개벽을 통해 양 문명이 조화를 이루어 인도와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적 문명세계의 도래를 주창하였다.
구한말 이후 한국에서 출현한 신종교들은 동학과 정역의 개벽사상이 보여 준 우주관과 역사적 인식, 민중의 시대적 열망에 부응한 민족주의적 지향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민족종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적인 개벽사상을 발전시켰다.
한국종교사에 나타난 개벽사상의 특징은 한반도와 한민족이 후천개벽의 중심이 된다는 민족주의적 성격, 숙명론적인 전통적 운세관과 구별되는 인간이 천지운행의 도수와 개벽에 참여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혁세론, 내세지향적인 종교의 이상세계론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종교적 이상을 실현한 지상선경, 지상천국을 지향하는 현세적 이상세계론의 성격을 보였다는 점이다.
1954년 한국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로 창립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개벽사상을 성서적 구원섭리사관의 관점에서 제시하면서 타락으로 잃어버린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지상천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창교자인 문선명·한학자 참부모 양위는 후천개벽시대를 여는 재림 메시아, 구세주로서 성서적 메시아사상과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을 선후천 교역의 개벽사상과 연결시켜 구원섭리적 역사관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성서에 예언된 재림 메시아의 강림을 기점으로 타락이후 전개된 선천시대인 죄악의 인류 역사가 끝나고 후천시대의 평화이상세계가 시작된다. 즉 선 주권과 악 주권의 교체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개벽사상의 선후천 교역을 재해석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