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용
姜元龍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함경남도 성별 남 생년월일 1917.7.3
[정의] 크리스천아카데미 원장으로 통일교회와 기독교 사이에 대화의 장을 마련한 목사.
[내용] 강원용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기독교 신학자이자 깨어 있던 시대정신으로 통일교회를 기독교의 한 분파로 인정하고 기독교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한 선각자이다.
1917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메이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신학대학교 학사, 캐나다 매니토바대학교 교육학석사,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교 신학석사, 뉴스쿨대학교 교육학석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 1931년 기독교에 입교하였으며, 1940년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1944년 수감되었다가 결핵으로 석방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남하하여 경동교회를 설립하였으며, 좌우합작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공산주의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49년 경동교회 목사로 있으면서 반공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53년 도미하여 공부를 계속하였다. 귀국한 후 1959년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종교 간 대화, 여성운동, 노동자 계몽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1968년 9월 크리스천아카데미에 참아버님을 비롯한 통일교회 지도자들과 김재준 한국신학대학 명예학장, 홍현설 감리교 신학대학장, 안병무 중앙신학대학장 등 기독교계 지도자 및 학자들을 초청하여 참아버님의 말씀과 유효원 협회장의 ‘원리’ 강의를 듣고 질의와 답변의 시간을 가지는 등 통일교회와 기독교의 대화의 문을 열었다. 이후 종교문제연구원 주최로 유효원 협회장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등 통일원리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강원용은 “나는 통일교회를 기독교로 본다.”고 선언하며 대화의 장을 발전시키려 하였으나 계속된 비판과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계의 깨어 있던 학자들이 ‘원리’ 공부를 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1972년 유신을 반대하던 민주회복국민회의에 가담하였으며, 1980년에는 김대중 사면을 조건으로 국정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경동교회 목사직을 은퇴하고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회장을 지냈으며, 1987년 서울올림픽 국제학술대회 책임을 맡아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1994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00년에는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재단법인 대화문화아카데미로 개편하고 명예이사장에 추대되었다. 이후 반미주의에 대해 세계적인 시각과 균형 잡힌 관점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하였으며, 무차별적 일제 청산에도 반대하였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말년에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존경받는 신학자이자 사회지도자의 삶을 살다가 2006년 8월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