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韓龍雲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내용]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1879-1944)로서 충남 홍성(洪城)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며, 본명은 봉완(奉琓)이었다. 일찍이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혁명에 가담했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1896년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생활의 방편으로 집을 떠나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입산하였다. 1905년 인제 백담사(百潭寺)로 다시 입산하여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출가 후에는 주로 교학(敎學)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즉 불교의 대중화 작업에 주력하였다.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저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한일합병으로 국권은 물론 우리말마저 쓸 수 없는 피지배 민족이 되자, 그는 중국 동북지방의 삼성(三省)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주지방 여러 곳에 있던 독립군의 훈련장을 순방하면서 그들에게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 주는 일에 전력하였다. 같은 해 부산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하여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해 종래의 무기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돼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한국 근대시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함으로써 「유심」에서 시작된 문학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朝鮮佛敎靑年會)를 조선불교청년동맹(朝鮮佛敎靑年同盟)으로 개칭하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했다. 같은 해 월간지 ‘불교’를 인수하였으며, 이후 다수의 논설과 글을 통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조선일보에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 계통의 민족투쟁비밀결사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 혁신운동과 각종의 저술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尋牛莊)에서 중풍으로 입적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박명(薄命)』, 『흑풍(黑風)』, 시집 『님의 침묵』 등이 있고, 불교관련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有神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과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