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인식론
統一思想 認識論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통일사상에 기반을 둔 인식론.
[내용] 인식론은 인식에 관한 여러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철학의 한 부문으로서 인식의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얻으며, 또 어떻게 해야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인식의 기원과 대상, 인식의 방법, 인식의 발전 등에 관한 논의가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철학의 분야에서 다루어졌던 인식론은 현대의 생리학이나 의학 등의 발전에 힘입어 인식의 과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점들이 많이 있다. 통일사상 인식론은 이와 같은 미해결 문제를 포함하여 종래의 인식론이 가졌던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인식의 기원
인식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논의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성론과 경험론 간의 논쟁이다. 오늘날까지의 인식론은 인식의 주체인 인간과 대상인 만물과의 관계를 명확히 몰랐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제한적인 관점에서 불균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성론은 인식의 주체에 중점을 두고 인간 주체의 이성을 통한 확실한 지식만을 강조하였고, 경험론은 인식의 대상인 사물에만 중점을 두고 감각을 통해 대상을 그대로 모사(模寫)함으로써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칸트에 이르러 이성론과 경험론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듯했지만 불완전한 것이었다. 칸트는 대상으로부터 오는 감각적 요소와 주체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사유 형식이 상상력에 의하여 종합되고 통일돼 인식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 주체가 지닌 요소와 대상이 지닌 요소의 종합에 의해 인식이 이루어짐을 뜻하는데, 주체와 대상의 필연적인 관계와 그것들을 종합하는 방법을 설명함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 이론이었다. 더군다나 칸트는 주체인 인간의 사유 형식, 즉 범주의 범위 안에서 포착되는 경험적 감각세계만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통일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성상에 해당하는 물자체(物自體)의 인식을 부정한 결과를 초래했다.
통일사상에 따르면, 인식이란 주체인 인간이 주관의 대상인 만물을 판단하는 행위이다. 인식, 즉 판단에는 경험이 수반되는 동시에 판단 그 자체는 이성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식에는 경험과 이성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와 같이 통일사상 인식론에 있어서 경험과 이성은 양자가 모두 필수적인 것이며, 양자가 통일됨으로써 인식이 성립한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과 만물은 주체와 대상의 상사성(相似性)을 지닌 필연적인 관계이므로 인간은 만물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인식의 대상
인식의 대상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인식 대상인 사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과 그것은 인간 마음속에 있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주관적 관념론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통일사상 인식론에서는 이 실재론과 주관적 관념론이 통일되어 있다. 우선 통일사상은 인식 주체인 인간의 외부에 사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즉 실재론을 인정한다. 인간은 만물에 대하여 주체이므로 만물을 인식하고 만물을 주관한다. 만물은 주체인 인간의 인식과 주관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독립하여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사물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 관념만을 인정하는 주관적 관념론은 통일사상에서 보면 인식의 주체적 요건인 마음속의 관념, 즉 원형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식은 ‘판단’인 바, 판단이란 일종의 측정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측정에는 측정의 기준 및 척도가 필요한데, 그 인식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이며, 통일사상은 이를 원형이라고 부른다. 원형은 생명체의 의식이 구비하고 있는 심적인 영상이며, 곧 의식 속의 관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마음속의 영상인 원형이 주체가 되고, 외부의 사물이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여 나타나는 영상이 대상이 돼 조합하면 인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통일사상 인식론은 인식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따른 조합론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사상에서 보면, 주관적 관념론의 관념이나 실재론적 사물의 실재성 중에서 어느 것도 뺄 수 없는 주체와 대상의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인식의 방법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대표적인 철학적 논쟁은 칸트의 선험적 방법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 간의 논쟁을 들 수 있다. 통일사상 인식론은 이 두 가지 방법을 하나의 틀에서 통일시킨다. 칸트의 선험적 방법이란 인간이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성의 형식, 즉 범주에 따라 외부의 사물로부터 오는 감각적 요소가 인식된다는 주장이다. 인식에 있어서 주도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인식의 내용인 감각적 요소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주관’, 즉 선험적인 형식인 것이다. 칸트는 이처럼 인식의 대상인 사물에서는 경험적 내용, 그리고 인식의 주체인 인간에게서는 선험적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통일사상에서는 대상인 만물에도 내용과 형식, 즉 만물의 속성과 존재형식이 있다고 보고, 주체인 인간의 몸에도 내용과 형식이 있어서 서로 닮은 만물과 인간의 내용 및 형식이 수수작용하는 것을 인식 과정의 첫 단계로 본다.
이와 같이 형성되는 수수작용은 외적 수수작용에 해당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의 상(像)이 만들어진다. 이를 외적인 영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꽃을 볼 때 인간의 망막, 즉 시신경을 통해 대뇌의 시각피질에 생긴 꽃의 영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만으로는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각기관에 생긴 꽃의 영상을 꽃으로 판단하는 마음속의 측정기준이 있을 때 비로소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 마음속의 기준이 바로 관념, 즉 원형인 것이다. 이 원형으로서의 관념도 물론 내용과 형식을 주체적 요건으로 미리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마음속의 관념이 주체가 되고, 몸 안에 생긴 영상이 대상이 되어 이루어지는 조합이 내적 수수작용이며, 이때 인식이 완료된다. 따라서 통일사상 인식론이 제시하는 인식의 방법은 선험적 방법도, 변증법적 방법도 아닌 수수작용의 법칙, 즉 수수법인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물질이 정신을 규정한다는 유물론 철학의 입장을 취한다. 이 유물변증법에 의하면 객관적 실재인 사물만이 그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인식에 있어서도 이 물질적 요소만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의 의식 안에서 형성된 사유 형식은 단지 물질적 요소인 존재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은 주체와 대상의 인식 관계를 역전시켰고, 주체인 인간의 의식에도 내용과 형식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통일사상의 수수법은 선험적 방법과 변증법적 방법을 함께 구비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통일사상의 인식에 있어서 외적인 수수작용에는 유물변증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유물변증법적 인식론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외부의 사물이 그대로 인간의 정신 안으로 반영되어 외적인 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인식의 내적인 수수작용에는 칸트의 선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원형을 품은 인간의 마음이 외적인 영상을 주도적으로 판단하여 인식의 결과를 이끌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일사상 인식론의 수수법은 역사적으로 분립되어 온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의 변증법적 방법과 선험적 방법을 조화롭게 통일시키고 있다.
☞ ‘이성론’, ‘경험론’, ‘선험적 방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