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
Thoma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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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유토피아』를 저술한 영국의 법률가이자 작가.
[내용]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였다. 1477년 런던의 법관 존 모어의 차남으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링컨법학원에서 법률을 배웠다. 에라스무스와 친교를 맺어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516년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상상의 섬나라를 유토피아(Utopia)의 이야기를 담아 소설을 출판하였다. 유토피아는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공산주의적 도시국가로 공동소유에 기초한 참된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보여 주어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1504년 하원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510년 런던 부시장과 하원의장 등을 역임하였고, 1521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후 헨리 8세의 조언자이자 법률가로서 활동하다가 1529년 대법관이 되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기 전 신부가 되려고 4년 동안 수도회에서 생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신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법관이 된 뒤 개신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탄압했으며 영어로 번역된 성서가 영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정치적으로는 헨리 8세에 협력하였지만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을 경계하였고, 헨리 8세의 혼인무효 요청편지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또한 헨리 8세가 잉글랜드 교회의 상징적인 수장이라고 선언한 ‘왕위 지상령’에 서약을 강요당하자 물러났다. 이후 앤의 왕비 계승을 부정하였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고, 1535년 유죄가 인정되어 참수형을 당했다. 처형 전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나님의 착한 종으로 죽는다.”고 선언하였다. 1935년 로마가톨릭의 성인으로 공인되어 정치의 수호성인으로 떠올랐다. 『원리강론』은 그의 유토피아 사상을 사회주의적인 내용으로 소개하고 창조이상을 지향하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인 발로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 ‘유토피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