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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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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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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공화국

Republic of Cote d’Ivoire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아프리카대륙권 선교국.

[내용] 코트디부아르공화국은 1975년 참부모님에 의해 선교사들이 파송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독일인 모니카 올러(Monika Oelher)가 여선교사로 처음으로 파송되었으며, 이어 야마모토 테츠오 일본인 선교사가 파송되었고, 1975년에 다른 선교사들도 파송되었다. 선교사들은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1976년부터 1978년까지 2일, 3일, 7일 수련회 등을 열성적으로 개최하였다. 이를 통해 새 식구들이 전도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코트디부아르공화국은 서아프리카의 본부 역할을 하여 1978년에는 김영운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의 모든 선교사들이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 집결하기도 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베냉의 호웅벳지 피에르(Houngbedji Pierre)와 호웨드지씨 라모우(Houedjissi Rameau), 코트디부아르공화국의 안토인 보니(Antoine Bony), 조조 가브리엘(Zozo Gabriel), 디디 가보 길버트(Didi Gabo Gilbert), 그리고 치쎄 코네(Cisse Kone) 등 중심 식구들이 코트디부아르공화국과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 전도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선교사들로부터 전도하고 교육하고 만물을 복귀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이들은 개척선교를 시작하기 위해 미국에 파송되어 40일 수련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976년부터 1980년 사이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출현과 군사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인근국가의 선교사들이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 머물게 되었다. 자이레의 아카히시 선교사, 니제르의 케빈 윈터(Kevin Winter) 선교사, 베넹의 카나다니(Kanadani) 선교사, 부르키나파소의 이토 선교사, 말리의 오바타 선교사 등이 쿠데타를 피해 코트디부아르공화국으로 왔다. 공산주의 때문에 본국에서 선교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이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전도와 ‘원리’ 교육을 실시하였다. 특히 아카히시 선교사는 7일, 21일, 40일 ‘원리’ 강의를 1992년 떠날 때까지 계속하여 코트디부아르 선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베넹의 선교사인 케이시 하팅도 같은 이유로 코트디부아르공화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978년 야마모토 선교사가 다른 사명을 받게 되어, 케이시(Kathy)가 코트디부아르공화국의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케이시의 선교활동으로 1982년 미국에서의 축복식에 서아프리카 식구들 8명이 참여하게 되었고, 1989년에는 첫 기성축복가정들이 한국에서의 축복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1991년 케이시 선교사가 나이제리아 선교사로 발령을 받아 떠나고, 후임으로 로버트(Robert Williamson)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로버트 선교사는 현지의 지도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여러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982년 6000가정 축복을 받은 임마누엘 코우아씨(Emmanuel Kouassi)가 코트디부아르공화국 국가회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1992년에는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서 약 60쌍이 서울에서 개최된 축복식에 참석하였다. 이는 아프리카대륙에서 자이레 다음으로 우수한 결과였다.

이후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 세계평화여성연합이 창립되어 새로운 선교활동의 길이 열렸다. 창립대회는 국가공영방송으로 TV를 통해 전 지역에 방송되었고, 모든 국민들이 참부모님의 비전에 대해 더욱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평화여성연합 코트디부아르의 초대회장은 리카네 폴레트(Likane Paulette)였다. 1993년에 윌리암선(Williamson) 선교사가 종족메시아의 사명을 위해 떠난 후 김수용 목사가 선교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약 6백 쌍이 1995년 8월의 축복식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는 코트디부아르공화국 선교 이래 최고의 실적이었다. 당시에 교육과 만물복귀의 책임은 3만가정인 아다마 도움비아(Adama Doumbia)가 맡고 있었다. 1996년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 4명의 국가메시아들이 파송되었다. 김관해(한국), 추가사 요시다(일본), 프랭크 카프만(미국), 그리고 허버트 아놀디(독일) 등 국가메시아들은 코트디부아르공화국의 많은 도시들에서 사전 축복을 진행하며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였다. 특히 이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창립되어 정치, 사회지도자들과 시민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1999년에는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이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 창립되었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국가지도자들을 연결하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 결과 국회의원, 장관, 종교 지도자, NGO 지도자 등 1천5백 명 이상의 국가지도자들을 평화대사로 임명하였다.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의 이러한 성공은 대학원리연구회,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평화여성연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그리고 세계평화청년연합 등의 지속적인 노력과 헌신의 결과였다.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는 10개의 교구 17개의 교회에 2,380명의 식구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