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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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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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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

John Calvi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칼뱅주의의 개창자이자 종교개혁의 완성자.

[내용] 종교 개혁가이자 완고한 예정설을 주장한 신학자이다. 1509년 프랑스 피카르디 노와용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소년학교 까뻬뜨를 다녔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11살 되던 해부터 성직록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고, 14살부터 파리로 가서 마르슈학교를 다녔다. 6개월 뒤 파리대학교 몽테귀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성직과 신앙문제에 회의가 생겨 법학을 공부하였다. 교회와 갈등이 있었던 아버지도 법학공부를 권유하였다.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193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파리로 돌아가 인문학을 공부하였다. 1533년 이단적 강연의 초안을 잡았다는 혐의를 받고 은신하다가 가톨릭과 결별하고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1536년 프랑스의 박해로 스위스의 바젤로 피신한 뒤 본격적으로 개혁가로 활동하였고, 1937년 초기 프로테스탄티즘 최고의 신학서적으로 꼽히는 『그리스도교 요강』을 완성하였다. 제네바 종교개혁을 위해 파렐과 제네바로 이주하였으나 신정정치에 기반을 둔 엄격한 개혁을 추진하여 추방되었다. 이후 슈트라스부르크의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로마서 주석』을 포함하여 여러 주석서를 집필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1541년 지지자들과 제네바로 돌아가 칼뱅주의 교회정책을 기반으로 신정정치를 시작하였다. 엄격한 도덕성에 기반하여 도시국가를 지배하면서 프랑스로 많은 목사들을 보냈다. 이러한 영향으로 프랑스의 칼뱅주의자들은 후에 가톨릭교도와 충돌해 위그노전쟁을 일으켰으며, 1598년 낭트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원리강론』은 그를 종교 개혁가이자 완고한 예정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소개하면서 모든 뜻의 성사를 하나님의 전담행사로 생각했다고 한계를 지적하였다.

☞ ‘종교개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