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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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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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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복

崔元福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신애충모님 출신지 황해도 개성시

성별 생년월일 1916년

[정의] 타락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해와의 타락을 복귀하는 사명을 다한 신애충모님.

[내용] 타락한 해와를 대표하여 참부모님을 충심으로 모시는 효녀의 사명을 완수하여 신애충모님의 휘호를 받은 원로이다. 1916년 개성의 유복한 양반집의 외동딸로 태어나 기독교 신앙을 하던 모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며 성장하였다. 또한 호수돈여자고등학교 재학시절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참하였다가 유치장에 끌려간 일이 있을 정도로 애국심이 남달랐다. 1933년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성적최우수상과 모범상을 받았으며, 전국 영어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혼인 이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1950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도미하여 미시간대학교 언어연구원에서 대학원 언어학과 교수법과정을 이수했다. 그 후 귀국하여 부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54년 민족과 국가에 새로운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기도와 정성을 들이던 중 1954년 12월 14일 한충화 교수의 인도로 ‘원리’를 듣고 입교하였다.

입교 후 1955년 1월 3일 예수님탄신기념일을 기하여 참아버님께서는 특별한 섭리적 사명을 부여하고 축도를 해 주었고, 그녀는 감동의 눈물로 그 사명을 받았다. 그러나 입교 후 학교에서 종교를 이유로 퇴직조치를 당했으며, 가정에서 이혼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다, 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1956년 이정옥, 이득삼과 삼위기대를 맺어 변함없는 충정의 마음으로 뜻 길을 갈 수 있었다. 특히 1960년 참어머님의 신부 확정 후 참어머님을 모시는 일을 전담하였다. 3월 26일 가약식 전에 대모님이 참어머님을 임계(臨界)한다는 맹세의식을 치렀는데, 참부모님의 성혼식 중 한국 재림에 관한 의식에서 복귀한 어머니로서 참어머님께 책임 인계의 뜻으로 금반지를 드리고 3배를 올리는 의식을 하였다. 이외에도 교회의 여러 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참부모님에 대한 절대신앙·절대복종·절대사랑의 자세로 모심의 생활을 하였다.

또한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참부모님의 세계 순회를 보좌하였으며, 『원리강론』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1975년 참부모님께서는 타락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개인적, 가정적 십자가를 지고 해와의 실패를 탕감하는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충성으로 참어머님을 보좌하여 제2차 7년 노정까지 승리할 수 있는 사명을 완결하였음을 공표하고, 이제 효녀의 입장에서 참어머님을 모시고 하늘 법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섭리적 사명을 완수하여 2006년 1월 15일 성화하여 ‘신애충모님(信愛忠母任)’이라는 휘호를 하사받았다.

☞ ‘한충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