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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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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dictionary_pt2-971

죽음

死亡 / Deat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① 육신의 목숨이 끊어져 영인체가 영계에서 영생하게 되는 것.

② 타락으로 인해 사탄의 주관권에 떨어진 상태.

[내용] 육신의 죽음

피조세계는 무형 실체세계인 영계와 유형 실체세계인 육계로 구성되도록 창조되었으며,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으로 구성되도록 창조되었다. 지상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육신을 벗으면 영계에 가서 영생하게 된다. 지상에서 생활하던 인간의 죽음은 육신을 벗고 영인체로 영계에 가는 것이다. 이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른 자연스럽고 거룩한 과정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태중에서의 10개월, 지상에서의 100년, 그리고 영계에서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다. 태중에서 지상의 삶을 준비해야 하듯이 지상의 생활은 영계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삶이 영계에서의 삶을 결정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과 영원한 사랑 관계를 맺기 원했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였다. 창조본연의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의 생활을 통해 완성되면, 그 영인체는 영계에서 하나님 사랑의 대상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사랑을 주고받으며 영원히 사랑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타락한 인간이 지상에서 악한 생활을 하면, 그의 영인체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 영원히 참사랑의 기쁨을 누리려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인간이 육신을 벗은 영인체 삶의 단계에서 실현된다. 따라서 지상에서 생활하던 완성한 인간이 노쇠한 육신을 벗고 영인체로 영계에 가는 것은 마치 영계에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기쁘고 아름다운 것이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인간을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마음과 몸으로 된 인간의 기본형을 닮았다. 피조세계는 인간의 몸과 같은 유형 실체세계인 육계와 그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마음과 같은 무형 실체세계인 영계로 구성되어 있다. 영계를 무형 실체세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적인 오관으로 감각할 수 없고 영적 오관으로만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계는 영적인 오관에 의하여 유형 세계와 꼭 같이 실감할 수 있는 실재세계이다. 유형·무형의 두 실체세계를 합친 것을 천주(天宙)라고 한다. 인간은 무형 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르면, 유형 세계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완전히 알 수 없다. 무형 세계는 주체의 세계이고, 유형 세계는 대상의 세계이다. 피조세계의 주관주로 창조된 인간은 무형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영인체와 유형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육신으로 구성되었다. 유형 세계에서 생활하던 인간이 육신을 벗으면 그 영인체는 무형 세계에 가서 영주(永住)한다.

인간의 육신은 육심(肉心, 주체)과 육체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육심은 육체로 하여금 생존과 번식 및 보호 등을 위한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작용부분이다. 동물에 있어서의 본능성은 바로 그들의 육심에 해당한다. 육신이 원만히 성장하려면 양성의 영양소인 무형의 공기와 광선을 흡수하고 음성의 영양소인 유형의 물질을 만물로부터 섭취하여 이것들이 혈액을 중심하고 완전한 수수작용을 해야 한다. 육신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서 영인체도 선화(善化) 혹은 악화(惡化)한다.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 주어지는 요소를 우리는 생력요소라고 한다.

인간의 영인체는 육신의 주체로 창조된 것으로서 영감으로만 감득되며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고 천사나 무형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무형 실체로서의 실존체이다. 영인체는 육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육신을 벗은 후에는 무형 세계에 가서 영원히 생존한다. 인간이 영존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이와 같이 영존성을 지닌 영인체가 있기 때문이다.

영인체는 생심(生心)과 영체(靈體)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생심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이다.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生素)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生力要素)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영인체가 육신에게 돌려보내는 요소를 생령요소(生靈要素)라고 한다.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 생심을 중심하고 창조원리에 의한 질서적 3기간을 거쳐서 성장하여 완성된다. 소생기의 영인체를 영형체(靈形體)라고 하고, 장성기의 영인체를 생명체(生命體)라고 하며, 완성기의 영인체를 생령체(生靈體)라고 한다. 생령체를 이룬 인간들이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육신을 벗고 영인으로서 가서 사는 곳이 천상천국이다.

영인체의 모든 감성도 육신 생활 중 육신과의 상대적인 관계에 의하여 육성되는 것이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해야만 영인체도 육신을 벗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체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영인체의 모든 소성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 영인체의 악화(惡化)는 육신 생활의 범죄행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영인체의 선화(善化)는 육신 생활의 속죄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인체가 그곳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인체 자신이 정한다. 인간은 원래 완성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긴 허물로 인해 이 사랑을 완전히 호흡할 수 없게 된 영인체는 완전한 사랑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도리어 고통이 된다. 이러한 영인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먼 거리에 있는 지옥을 자진하여 선택한다.

타락으로 인한 죽음

인간 육신의 죽음은 영인체로서 삶의 장소를 영계로 옮기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삶의 과정이다. 이것은 창조원리에 의한 현상이므로 인간시조의 타락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타락의 결과인 죽음은 하나님의 참사랑 주관권을 떠나서 사탄 주관권에 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무리 육신이 살아 있는 지상의 인간이라도 사탄 주관권에 머무르면, 그는 죽은 사람과 같다. 반대로 육신을 벗고 영인체로 영계에 거하는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참사랑 주관권에 있으면,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신약성서 누가복음 9장 60절의 기록이다. 부친을 장사하기 위하여 자기 집에 가려고 하던 제자에게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였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죽음과 삶에 서로 뜻을 달리하는 두 가지의 개념이 있다. 첫째는 장사를 치러야 할 그 제자의 부친과 같이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에 대한 생사의 개념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삶은 그 육신이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둘째는 죽은 부친을 장사하기 위하여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여 말하는 죽음에 대한 생사의 개념이다. 이 죽음은 하나님 사랑의 품을 떠나서 사탄 주관권에 떨어진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삶의 의미는 하나님 사랑의 주관권에서 그의 뜻대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비록 육신이 활동을 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서 사탄의 주관권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창조본연의 가치기준에서 죽은 자이다. 반면에 이미 육신의 목숨이 끊어진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영인체가 영계의 천상천국 혹은 하나님 사랑의 주관권에 있다면, 그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원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어도 육신이 노쇠하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하였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육신은 영인체의 옷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옷이 더러워지면 벗는 것과 같이 육신도 노쇠하면 벗어버리고 영인체만이 무형 세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 만일 인간이 지상에서 육신을 쓴 채로 영존한다면, 영인체의 갈 곳인 무형 세계는 당초부터 창조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무형 세계는 타락한 인간의 영인체가 가서 살게 하기 위하여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들이 지상에서 생활하다가 육신을 벗은 후 그 영인체가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으로서 창조되어 있었다.

타락한 인간이 육적인 생명에 강한 미련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이 원래 육신을 벗은 후에는 보다 아름답고 영원한 무형 세계에 가서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있어서의 육신 생활과 무형 세계에 있어서의 영인 생활을 애벌레와 나비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애벌레에게 의식이 있다면 마치 인간이 육신 생활에 대하여 애착을 느끼고 있듯이 그도 허물에 애착을 느끼어 벗고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애벌레가 일단 나비가 된 후에는 향기로운 꽃과 달콤한 꿀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상인과 영인의 관계는 바로 이 애벌레와 나비의 관계와 흡사하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지상인들은 같은 지상인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인들과도 자유로이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육신을 벗는 것이 결코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서 완성되어 생활하다가 노쇠한 후 육신을 벗고 가게 되는 영인의 세계가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오히려 육신을 벗고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날을 그리워하며 고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