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宗敎改革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16-17세기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한 개혁운동.
[내용] 중세기 로마가톨릭교회의 지나친 세속화와 부패를 비판하면서 일어난 교회체제 전반에 걸친 변혁운동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1309-1377)에 이은 교회의 대분열을 겪으면서 도덕적으로 더욱 부패하였다. 이에 로마가톨릭교회를 갱신하려는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롤러드파를 이끈 영국의 위클리프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교회의 관행과 성직자의 신분적 특권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그의 정신을 계승한 보헤미아의 후스는 교회의 토지 소유와 세속화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교회의 영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는 교회에 만연된 미신과 도덕적 악습을 공격하면서 그리스도를 모방하라고 촉구했으며, 피렌체에 있는 산마르코 수도원의 부원장이었던 도미니크수도회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 Savonarola, 1452-1498)는 교회의 윤리적 쇄신을 시도했다가 끝내 순교당하기도 하였다.
14세기부터 이어져 온 종교개혁의 움직임은 독일의 사제인 마틴 루터(M. Luther)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성당의 수리와 개축비용을 면벌부(免罰符) 판매로 충당하려고 하자 이에 분노한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교황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그는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신앙의인론을 천명하였다. 또한 교황과 사제의 특별한 권리를 부정하고 모든 신앙인의 제사장성을 강조했으며, 종교적 권위나 전통이 아닌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근본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 프랑스에서는 칼뱅이 종교개혁을 일으켜 세속화된 가톨릭교회를 개혁해 나갔다. 이로 인해 로마가톨릭교회의 일원적 지배가 무너지고 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하였다.
『원리강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중세사회를 중심으로 이루려던 섭리가 교황의 거듭된 영적 타락으로 실패로 끝나자 이 사회를 붕괴시켜 메시아 왕국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섭리를 진행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가인 편에서 등장한 운동이 헬라 사상의 복고운동인 문예부흥이었고, 아벨 편에서 등장한 운동이 히브리 사상의 복고운동인 종교개혁이었다. 종교 개혁가들은 사탄에 의해 세속화된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열렬히 신봉했던 초대기독교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독일의 마틴 루터를 중심을 본격화된 교회 개혁운동은 프랑스와 스위스 그리고 영국으로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하여 마침내 교황을 중심한 국토 없는 영적인 왕국이 붕괴되고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교황에게 예속되어 있던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누구나 성경을 중심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