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7년 노정
第3次 7年路程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부모님이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세계적 기반 조성을 위해 펼친 섭리적 시대 경륜.
[내용] 제3차 7년 노정
참부모님은 제3차 7년 노정 기간 동안에 희망의 날 한국 만찬회, 희망의 날 대강연회 한국대회, 1800쌍 축복결혼식, 총해원식, 여의도 구국세계대회 등 연이은 한국에서의 주요 대회를 개최하였다. 미국에서는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대회에 이어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대회로 뉴욕 양키스타디움대회와 워싱턴모뉴먼트대회를 승리적으로 거행하였다. 워싱턴대회 승리 이후에는 모스크바에서 다음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공표하기도 하였다. 참부모님은 제3차 7년 노정을 통해 천승일과 지승일을 선포하고, 축복가정을 중심한 가정교회의 운동을 출발하였다. 세계적으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선교 기반을 실체화하고 참부모님의 3차에 걸친 총 21년 노정의 승리를 선포하였다.
한국의 기반과 세계 섭리의 연결
제3차 7년 노정은 제2차 7년 노정에서 거둔 국가 기반과 세계적인 영적 승리의 기준을 토대로 세계적 실체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국에서 조직된 국제기동대 중 526명이 1차로 한국의 부산, 대구, 서울, 인천, 전주, 광주, 대전, 춘천 등지에서 개최된 ‘희망의 날 대향연’을 위해 페리호 선편으로 부산항에 도착했으며, 4월 1일에도 137명이 내한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4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 전국 9개 도시 희망의 날 대향연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참부모님은 ‘인류의 새로운 장래’를 주제로 말씀하였다. 여세를 모아 6월 7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는 60개국 1천여 명의 대표와 120만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구국세계대회가 치러졌다. 참부모님은 신앙의 조국을 수호하려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의지와 시민들의 결의를 모아 한국과 세계의 섭리를 연결하였다.
세계 127개 선교국 개척
1975년 2월 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1,816쌍 국제합동결혼식을 주재한 참아버님은 곧바로 2월 10일 일본에서 세계선교사회의를 개최하고 일본과 미국, 독일 식구들 1명씩 3명의 선교팀을 조직하여 95개국에 파송할 것을 지시하였다. 일본은 해와 국가로서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벨 국가인 미국과 가인 국가인 독일과 하나 되어 참부모님을 중심한 세계 섭리를 주도적으로 펼쳐 가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참부모님은 1975년 5월 5일부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기존 선교국을 포함해 세계 127개국에 선교 기반을 마련하였다. 제3차 7년 노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120문도를 세계적으로 복귀하는 입장에서 초민족적·초국가적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1976년 5월 뉴욕 맨해튼의 43층 뉴요커호텔 건물을 매입해 세계선교본부를 설치하고 운영하게 되었다.
참부모님의 세계적 해방과 가정교회의 운동 전개
참부모님은 미국에서 1976년 6월 1일 뉴욕 양키스타디움대회를 5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거행하였으며, 9월 18일 워싱턴모뉴먼트대회를 3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기록적인 승리로 이끌었다. 나아가 승공운동의 기반 위에 공산주의 종언을 향해 모스크바에서 다음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였다. 한국에서의 섭리적 승리와 미국을 중심한 세계적 대회와 세계 선교시대의 도래를 기반으로 참부모님은 1976년 10월 4일 뉴욕 벨베디아에서 천승일을 선포하였다. 천승일은 하늘이 승리하였음을 기념한 선포일이다. 이어 1977년 2월 23일에는 지승일과 천기원년을 선포하였다. 지승일은 땅이 승리하였음을 기념한 선포일이다. 하나님과 참부모님 양위분이 3차에 걸친 7년 노정에 승리하였음을 공표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반 위에 새로운 시대의 연호로 천기원년이 선포되었다. 나아가 1977년 5월 3일에는 참부모님의 세계적 해방이 선포되었다.
참부모님의 이러한 승리적 기반 위에 가정교회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참아버님은 1978년 1월 3일 미국에서 개최된 신년지도자회의를 통해 1월 10일부터 360호 가정교회의 운동에 집중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어 3월 15일 미국 주책임자회의에서 다시금 가정교회의 활동을 강조하면서 4월 1일부터 3만 명 식구 확보를 목표로 『원리강론』과 ‘원리’ 강의 카세트·비디오테이프를 나눠 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라고 말씀하였다.
1978년 미국에서는 미국 로널드 프레이저 의원을 중심한 국제관계소위원회 청문회를 통해 참부모님과 통일운동을 한국중앙정보부의 스파이 혐의로 조사하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미국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참부모님은 영국에서 가정교회의 운동 체제를 구축하고, 1978년 9월 25일 한국에 귀국하여 전국 식구들에게 10월 1일부터 가정교회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것을 지시하였다. 11월 19일 일본에서도 가정교회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축복가정이 360가정 복귀를 통해 종족메시아가 되고 참부모님의 세계적 승리기반을 상속하는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참부모님은 세계적 승리의 기대 위에 천주청평수련원에서 통일해원식을 거행하고 문 씨 종족 해방과 세계 종족 해방을 선포하였다. 한편 참부모님은 1980년 4월 15일 ‘부모의 날’에 3차 7년 노정의 승리를 선포하였다. 이로써 섭리는 부모의 책임분담시대로부터 자녀의 책임분담시대로 옮겨졌다. 참부모님이 세계적으로 승리한 기반 위에 축복가정들이 앞장서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