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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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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dictionary_pt2-438

유광렬

柳光烈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강원도 춘성군 동면 평촌리 191 성별

생년월일 1928.7.25(음)

[정의] 시인으로 협회 초대문화부장이자 역사편찬위원장을 맡아 헌신한 원로.

[내용] 1928년 강원도 춘성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친구의 인도로 감리교에 입교하였으며, 1946년 3월 19세의 나이로 강원일보 기자가 되었다. 이후 뒤늦게 중고등학교 과정을 다니며 춘천 기독학생회장이 되었으며,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진중신문’을 혼자 편집하였다. 1952년 서울대에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감리교 호헌파에 속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중 황환채의 인도로 1954년 12월 40일 원리수련을 받고 입교하였다. 1955년 3월 성화청년회 초대문화부장에 선임되었으며 잡지 「성화」를 창간하고, ‘성화청년회가’를 작사하기도 하였다. 교회의 여러 행사에서 축시와 송시를 쓰는 등 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7년 7월 목포로 개척전도를 나갔다. 1961년 시집 『생화』, 『이야로』, 『조국』을 발간하였으며 1961년 5월 도서출판 성화사 사장이 되었다. 1968년 1월 국제승공연합 초대선전국장을 맡았고, 1968년 기성축복을 받았다. 1981년 11월 협회 편사실장, 1985년 1월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55년부터 26년 동안 참부모님 탄신일에 발표한 축하시를 1980년 시집으로 묶어 봉정하기도 했다. 1993년 12월 18일 ‘서울의 노래’로 한국시 대상을 수상했으며 루마니아 국가메시아로 임명받았다. 2001년 4월 30일 성화했다. 참부모님은 ‘심철광렬(心哲光烈)’의 휘호를 하사하였다.

☞ ‘황환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