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元曉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신라의 승려.
[내용] 신라의 승려로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사상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수많은 저술을 남겨 불교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5세 무렵에 출가하여 낭지(朗智)와 혜공(惠空) 등의 고승에게 불법을 배웠다고 전해지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하여 입당(入唐)하기 위하여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655년에서 660년 사이에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는데, 이 실계(失戒)는 오히려 원효를 더욱 위대한 사상가로 전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실계 후 스스로를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칭하고 광대들이 무롱(舞弄)하는 큰 박을 본 따 무애(無碍) 박을 만들어 천촌만락을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원효는 불교를 널리 보급하는 한편 불교 경전의 연구에도 힘을 기울여 당시까지 전해진 거의 모든 경론(經論)들에 대한 주석서(註釋書)를 저술하였다. 모두 100여 종 240여 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가운데 일부만 전해진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저술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 등이고, 이 중 『대승기신론소』과 『금강삼매경론』 등은 중국의 고승들도 ‘해동소(海東疏)’라 칭하며 즐겨 인용하였다. 원효 사상의 핵심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의 근원을 회복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마음의 근원이 바로 일심이다. 화쟁은 다양한 불교 이론들 사이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원효는 일심과 화쟁사상을 통해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 ‘화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