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아브라함 家庭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braham’s famil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1장 제3절의 내용으로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내용.
[내용]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노아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려는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고 이루므로 노아가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그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노아 가정이 이루려다 못 이루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맞아야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해야 하였다.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아브라함이었다.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10대에 걸친 400년 탕감기간을 경과한 후 노아 대신으로 아브라함을 세웠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대신이요. 아담의 대신이었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를 축복한 것처럼 아브라함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였다.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1)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로써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였다. 그것들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이었다. 그는 상징헌제를 드리기 전에 아담 가정의 입장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먼저 세워야 하였다. 애급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고자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녀와 부부의 관계라고 하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미리 계획한 대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그의 처 사라를 남매의 입장에서 바로의 아내로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바로를 징계하여 다시 아내를 찾아오는 동시에 데리고 갔던 조카 롯과 함께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나왔다. 아브라함은 그와 같이 탕감조건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로써 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로 바쳤던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는 3단계의 성장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를 상징한 것이다.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였고, 양은 장성을 상징하였고, 암소는 완성을 상징하였다.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아담으로부터 노아와 아브라함까지 3대에 걸친 종적인 섭리의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3제물로써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려던 것이다. 아담의 당대에서 3단계의 성장 기간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처럼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하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제물을 쪼갰던 것은 첫째로 아담 가정에 있어서 선과 악의 모체였던 아담을 선과 악의 두 표시체로 분립하기 위하여 아벨과 가인으로 갈라 세운 것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로 노아가 홍수 40일로써 선과 악을 갈라 세웠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으며, 셋째로 사탄의 주관 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선 주권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넷째로 사탄과 혈연관계를 통하여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사탄의 것을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조건물이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이 소생을 상징한 비둘기가 사탄의 소유물로 남아지게 되었으므로 소생의 기대 위에 세워져야 했던 장성과 완성을 상징한 양과 암소에게도 사탄이 침범하였다. 따라서 그 상징헌제가 사탄에게 바친 결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범죄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역한 400년 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한 벌을 받은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위하여 사탄 분립의 터를 닦은 기간이기도 하였다.
(2)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예정된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그 중심인물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불러 상징한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는 새로운 섭리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원리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1차였고, 노아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으며,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3차였다. 그런데 3수는 완성수이기 때문에 제3차 섭리인 아브라함 때에는 그 섭리를 완성해야 될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실체로 헌제하여 보다 큰 것으로서의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상징헌제의 실수로 인하여 상징적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었다.
둘째, 헌제를 드리던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이 아담과 가인에게 침범함으로써 2대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하여 하늘 편에서도 아브라함과 자식까지 2대에 걸쳐서 빼앗아 올 수 있는 섭리를 할 수 있었다.
셋째, 아브라함은 소생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터전과 장성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의 기대 위에서 부름을 받아 완성 상징헌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했지만, 하나님은 아벨과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기대를 조건으로 아브라함에게 한 번 더 헌제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자식으로 받았던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죽이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대하던 아브라함의 심정과 믿음 그리고 순종에서 나온 행동이 실제로 이삭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립하였다. 그렇게 사탄이 분리된 이삭이 하늘 편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다.
(3) 뜻으로 본 이삭의 위치와 상징헌제
하나님은 상징헌제에서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으며, 연장된 복귀섭리를 연장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자식인 이삭을 죽이려고 한 충성은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과 같은 입장을 조성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입장에서 다시 살린 것은 아브라함 자신도 이삭과 같이 죽은 입장에서 사탄을 분립함과 동시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로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였고, 더 나아가 뜻을 중심하고 이삭과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죽음의 자리에서 같이 살아난 이삭과 아브라함은 서로 개체는 다르면서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한 몸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을 중심한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삭을 중심한 섭리로 연장되더라도 그 섭리에서 이삭이 성공하면 아브라함도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인해 섭리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연장됐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아브라함이 실패하지 않았고 섭리도 연장되지 않은 것처럼 되었다.
헌제를 중심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첫째,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실수 이전의 입장으로 탕감복귀해 섭리적인 사명을 이삭에게 인계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 이삭은 뜻 앞에 순종굴복함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늘의 사명을 이어받은 다음에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와 같이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에게로 옮겨진 후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이 준비한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다. 그것은 그대로 이삭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헌제가 되었다.
실체기대
이삭을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그의 자식이었던 에서와 야곱을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분립하여 놓고 실체헌제를 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뤄야 했다. 먼저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야곱은 다음과 같이 실체헌제를 성공한 후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인한 400년간의 탕감노정을 걷기 위하여 애급으로 들어갔다.
첫째, 야곱은 차자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떡과 팥죽으로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다. 둘째, 야곱은 사탄 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21년간 고역하면서 가정과 재물을 중심하고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셋째,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실체로써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였다. 야곱은 이와 같이 하여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함으로써 실체헌제를 위한 중심인물이 되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간의 고역을 마치고 하늘 편 처자와 재물을 취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는 그를 사랑하고 환영했기 때문에 그들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 또 노아 가정의 셈과 함이 실체헌제에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담 가정에서부터 세우려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3시대에 걸쳐 연장되어 아브라함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뜻이 이삭에게로 연장되었다. 그런데 이삭 가정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메시아가 그때에 강림해야 될 것이었다.
타락한 인간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은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세계를 메시아를 위한 왕국으로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 때 타락한 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한 민족을 형성해 아브라함 가정과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대 위에 메시아가 강림할 수는 없었다. 그 기대가 사탄 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민족적인 판도 위에 세워진 후에야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고 실체헌제에도 성공하여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대를 중심하고 후손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상징헌제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벌로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조성한 이삭의 후손들은 고향을 떠나 이방(異邦)에 들어가서 400년간을 고역하면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온 후에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전형노정을 성공적으로 걸었다. 그 전형노정을 따라서 모세도 걸었고, 예수님도 걸었으며, 이스라엘 민족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사는 사탄을 민족적으로 굴복시켜 온 전형노정의 사료(史料)가 된다. 이스라엘 민족사가 복귀섭리역사의 중심사료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PREV 원리강론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
NEXT 원리강론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