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강론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모세를 中心한 復歸攝理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2장 제2절의 내용.
[내용]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우는 것이었다.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3차로 진행되었다. 2차 노정과 3차 노정은 성막과 석판을 중심한 섭리로 진행되었으며, 3차 노정은 중심인물이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교체되어 진행되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을 애급에서 고역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은 끝나게 되었다. 여기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다. 모세는 이와 함께 타락 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사탄 세계의 중심인 바로 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내야 하였다. 모세는 남모르게 그의 유모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궁중 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와 충절을 세웠다. 이와 같이 모세는 바로 궁중 생활 40년으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부모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던 기간은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을 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모세가 애급인을 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이 인간시조를 타락시켰고,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의 입장에서 인류 죄악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 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 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또한 모세로 하여금 바로 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세우기 위함이었다.
모세의 그런 행동을 보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존경하고 믿고 모시며 따랐더라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를 건너거나 시내 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길을 통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을 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발설하여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해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여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하였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으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워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였다. 가인의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던 모세를 절대로 믿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이 이루어져 실체기대가 조성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3대 기적과 10재앙의 권능을 주어 애급인을 치게 함으로써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섭리를 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3대 기적과 10재앙을 보고 모세를 하나님이 보낸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라고 믿고 복귀노정을 출발했다. 그들이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노정의 전 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야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야 민족적인 실체기대가 이뤄지게 돼 있었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홍해를 건너고 시내 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이었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를 위한 섭리는 성막과 석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성막과 석판을 중심한 섭리가 성공해야 실체기대가 이뤄질 것이었다.
이를 위해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석판을 받았다.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는 후 아담과 후 해와를 상징했다. 그리고 성막(聖幕)은 메시아의 상징적인 표시체였다. 성막은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의 두 부분으로 돼 있었는데 지성소는 메시아의 영인체, 성소는 메시아의 몸을 상징했다. 법궤는 크게는 천주(天宙), 작게는 성막의 축소체였다. 하나님이 석판과 성막 그리고 법궤를 중심한 섭리를 진행한 목적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신앙의 대상을 세워 놓으려던 것이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것을 절대로 신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의 대상을 바통과 같이 이어받게 하면서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메시아가 상징적으로 강림했음을 의미하므로 성막을 위한 기대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로 돼 있었다. 성막을 위한 기대는 3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내산에서 40일 금식을 한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석판을 받음으로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믿고 순종하며 가나안에 들어가면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이뤄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40일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으로 섬겼다. 그것을 본 모세는 석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렀다. 그 결과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실패하였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다시 40일 금식을 한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석판을 받음으로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웠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믿고 순종하여 성막을 건축함으로써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믿고 따라 가나안에 들어가서 성전을 지어야 이뤄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따라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했지만 계속 불신함으로 인해 실체기대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 결과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사탄의 침범을 받게 돼 제3차 섭리로 연장되었다.
모세의 변함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인해 성막은 여전히 모세를 중심하고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르비딤에서 성막의 중심인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의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 서 있었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면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을 위한 조건이 40일 정탐 기간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로부터 족장 한 사람씩을 모아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불신의 보고를 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새로이 한 장관을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떠들었다. 그럼으로써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하게 되었다.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 40일 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40년 동안 광야를 표류해야 하였다. 모세는 광야 40년 기간을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모시고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옴으로써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웠다.
성막을 충성으로 받들고 모셨던 모세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표류의 40년 기간을 변치 않는 신앙으로 성막을 받들고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정탐 기간 40일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기대를 세우면, 그 때에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어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뤄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가 이뤄지게 돼 있었다.
석판은 법궤의 축소체요, 법궤는 성막의 축소체이므로 결국 석판은 성막의 축소체였다. 그러므로 법궤나 성막은 석판이나 그의 뿌리가 되는 반석으로 표시될 수 있었다.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광야 40년 기간을 신앙으로 세우지 못하고 불신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모세가 불신하던 백성을 보자 격분하여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침으로 인해 실체기대의 중심인물 자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반석은 완성한 아담을 상징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장차 반석이 될 아담을 쳐서 타락시켰다. 따라서 아담은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다. 모세가 지팡이로 치기 전 샘물을 내지 못한 반석은 바로 타락한 아담을 상징한 것이다. 모세가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은 생명나무로 와서 타락한 인간에게 생명수를 준 메시아를 상징했다. 모세가 반석을 한 번 친 것은 타락한 제1아담을 완성한 제2아담 예수님으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운 것이다. 모세가 하늘 편에서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을 또 다시 친 행동은 장차 복귀한 반석으로 와서 만민에게 생명수를 먹여 줄 예수님을 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죄가 된 것이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으로 이루려던 출발을 위한 섭리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러나 모세의 내적인 불변의 심정과 여호수아의 믿음과 충성으로 인해 내적으로는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할 수 있었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후 실체기대의 중심인물 자리를 떠나게 되어, 여호수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석판과 성막 그리고 법궤는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세우고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여리고 성으로 정탐을 보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믿음의 보고를 하였다.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의 말을 믿어 과거에 40일 정탐에서 불신의 보고를 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후손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맹세함으로써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 위에 서게 되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실체기대가 이루어져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 기대가 조성되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장차 메시아가 걸어야 할 사탄굴복의 전형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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