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강론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原理講論 메시아의 降臨과 그 再臨의 目的 / Messiah, his Advent and the purpose of his second coming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메시아의 강림과 재림의 목적을 설명하는 『원리강론』 전편 제4장.
[내용] 십자가에 의한 구원섭리
1) 메시아로 강림한 예수님의 목적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한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려는 것이었으므로 결국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먼저 이루어야 했다.
2)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섭리가 완성되었는가?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생활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속죄가 필요 없고, 기도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도도 없다. 예수님은 이렇듯 십자가의 대속으로써는 메시아로 강림한 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었으므로 재림할 것을 약속하였다. 십자가가 대속의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원죄까지 완전히 벗겨 줌으로써 죄를 지으려고 하여도 지을 수 없는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시켜서 지상천국을 이루어 놓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뚜렷한 하나의 정염(情念)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김으로써 분개하고 서러워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서 보호 육성했고, 때로는 그들을 고난과 시련으로써 인도하였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어 위로하며 장차 메시아를 보낼 것을 굳게 약속하였다. 하나님이 세례 요한까지 보내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게 한 것은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하였다.
4)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한계와 예수님 재림의 목적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영육 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주었으므로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육신에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을 믿어 한 몸을 이룬 신도들의 육신도 그대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아무리 독실한 신앙자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贖罪)로써는 육적 구원을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담부터 내려오는 혈통적인 원죄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원죄는 그대로 남아지게 되어 또다시 원죄 있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이다.
5)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였다. 메시아를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는 메시아를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해야만 하였다.
6)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한 성구는 예수님이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육 아우른 구원섭리를 완성할 수 없게 되자 영적인 구원만이라도 이루려고 탕감조건으로서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이후의 말씀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길을 만류한 것은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길마저 방해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책망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최후의 말씀을 한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 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십자가에 의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를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으로 하나님과 직접 영교(靈交)해야 되고, 둘째로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 요한
1) 엘리야의 재림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심적 동향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 소망에 못지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했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식은 없었고, 예수님이 갑자기 메시아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는 혼란이 일어났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던 엘리야라고 말했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2) 유대 민족의 갈 길
예수님에 대한 전후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당시의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세례 요한은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제사장들까지도 그에게 ‘혹시 당신이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물어볼 정도로 유대인들에게 훌륭하게 보였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세례 요한의 말을 믿고 엘리야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메시아가 왔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3) 세례 요한의 불신
하나님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세례 요한에게 직접 교시하였고, 세례 요한도 그렇게 증거했으며 그 자신도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의 지혜로써 알아야 했다. 설혹 세례 요한이 그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거 받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그를 엘리야라고 증언한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자신이 엘리야라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선포해야 마땅하였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후 제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하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불신하였고, 자기가 엘리야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유대 민족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말았다.
4)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엘리야가 지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해 완성하기 위하여 세례 요한이 왔었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슬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기 위하여 출생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명적인 입장에서 재림한 엘리야이었던 것이다.
5) 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무지와 불신은 유대인들의 불신을 초래하였고, 유대인들의 불신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한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천적인 비밀을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을 무조건 위대한 선지자라고 단정하는 견지에서만 성서를 보아 온 까닭이다. 우리는 인습적인 신앙 관념과 구태(舊態)를 벗어 버리기를 두려워하는 고루한 신앙태도를 버려야 한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 요한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믿는 것도 부당하거니와 사실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 요한을 잘못 알고 사명을 다한 것으로 믿는 것도 잘못된 신앙임에 틀림없다. 타락한 인간은 신령면으로나 진리면으로 항상 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