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Avigno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과거 로마교황청이 이전했던 프랑스 남부의 도시.
[내용] 십자군 전쟁 이후 교황의 권위는 약화되었으며, 프랑스의 왕 필립 4세는 봉건제를 넘어선 왕 중심의 국가 체제를 구상하였다. 필립 4세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성직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기 시작함으로써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1303년 9월 필립 4세와 동맹 세력들은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을 급습하여 체포하였다.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의 후임으로 1303년 10월 베네딕토 11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그는 8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1305년 베네딕토 11세 교황 후임으로 선출된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 교황은 필립 4세 왕의 간섭으로 인하여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가지 못하고 아비뇽에 머물게 되었다. 클레멘스 5세 교황은 1309년 교황청을 아비뇽에 두게 되었다. 이로써 1309년부터 1377년 그레고리우스 11세 교황이 로마로 돌아갈 때까지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은 아비뇽에 거주하면서 프랑스 왕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기간을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한다. 『원리강론』은 유대 민족의 바빌론 유수와 교황의 아비뇽 유수를 복귀섭리의 동시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 ‘섭리적 동시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