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론
신정론 / Theodicy
항목체계 종교일반 종교학
[정의] 현실 세계의 악과 고통, 불의에 대하여 전지전능하고 궁극적으로 선한 신의 존재와 정당함을 변론하는 신학적 성찰.
[내용] 인간의 고통과 악, 불의의 현실에 대한 물음은 가장 근원적이고 널리 퍼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주제이다. 왜 완전한 신이 창조한 세상이 불완전한가, 왜 신이 전지하다면 고통과 죄악을 미리 알고 막지 않는가, 왜 욥 같은 의인이 고통을 받고 악인들은 벌 받지 않고 번성하는가, 왜 세상의 악을 그대로 두는가?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존재, 세상의 창조자이며 우주와 역사를 경륜하는 존재라는 입장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물음들을 신학이나 종교철학에서는 ‘악의 문제’라고 한다.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악한 현실을 신의 존재에 저촉되지 않게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신정론이다.
신정론이라는 용어는 근대 합리주의의 전성기인 18세기 철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가 신(theos)과 정의(dike)를 합성하여 지은 저서명 『신정론(Essais de théodicée』(1710)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과 스토아주의의 논변으로부터 현대 자유의지와 결정론(필연성) 논쟁에 이르기까지 신정론적 성찰은 세상의 악과 고통의 현존에 대한 합리적인 종교적 답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계속돼 왔다. 막스 베버는 종교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고 신정론을 유형화하여 세계종교의 분석 틀로 삼기도 했다.
행복의 신정론은 행운과 특권 그리고 그 토대인 불평등한 구조를 신적인 것으로 정당화하지만, 이러한 입장에서 의인의 고난과 불행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불행과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고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고통과 불행의 신정론이 등장했다. 고통의 신정론은 세계의 구조를 억압과 악의 현실로 보고 부정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원론에 근거한 도피의 신정론과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정당하지 않는 고통과 불의를 내세의 심판으로 정당화하는 신정론이 있다. 베버는 힌두교나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윤회도 이러한 고통에 대한 보상 신정론의 한 형태로 보았다. 피터 버거는 신정론을 합리적 신정론과 비합리적 신정론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기독교의 고전적 신정론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정립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의 도움으로 악을 선의 결핍(privatio boni), 비존재로 규정함으로써 마니교의 이원론에 내재된 문제를 극복하였다. 그에 의하면, 존재하는 세상을 선하게 창조한 신은 악의 원인이 아니며 도덕적 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타락행위, 즉 원죄와 그에 대한 벌의 결과이다. 즉 벌의 고통으로서 악은 신의 정의와 더 큰 창조의 질서 그리고 선을 위한 섭리의 일부이며, 그것은 물리적인 악과 선을 위한 교육과 영혼의 정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신에 의해 허용된 것이다. 악을 선의 결여, 비존재로 보며 고난과 악에 도덕적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고 선을 위한 섭리의 과정으로 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정론은 이후로 기독교신학의 기본적 관점으로 지속되었다. 그 후 종교개혁자들은 불의한 죄인을 은총으로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의화(justification)의 신학으로써 신정론에 새롭게 답변하였다. 하나님은 분배적 의가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고 의롭게 함으로써 자신을 의로운 자로 입증한다는 것이다. 또한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근대 자연신학은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지만 용납하지는 않고, 결국 선을 위해 이바지하도록 악의 한계를 설정하고 마지막에 영광의 나라에서 완전히 극복되게 한다고 보았다.
전통적 기독교의 신정론은 악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로 인해 당하는 고통도 하나님의 궁극적 선을 위한 시련 등으로 해석함으로써 악과 고통의 현실을 회피하거나 순응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신정론의 문제는 현대에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악에 대해 신학이 방관하거나 묵인했던 역사에 대한 심각한 반성 속에서 다시 등장하였다.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은 하나님이 억압받고 고통 받는 희생자들의 울부짖음과 고난 속에서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으며, 그 고통과 고난 속에서 위로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세상에 만연한 악의 문제를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원리, 타락의 원인과 죄의 뿌리를 밝힘으로써 새롭게 해소하고자 한다. 가정연합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믿지만, 그 완전성과 전지전능함은 하나님이 스스로 창조한 원리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스스로의 원리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으로 행사된다고 본다.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대상이자 자녀로서 창조한 인간이 성장 기간에 자유의지를 통해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하나님과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는 신인협력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위업에 참여하게 하려는 창조원리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나아가 참사랑의 본체이며 부모인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한 이후로 피조세계에 만연한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를 포함한 인간과 함께 고통을 받고 있으며,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고 창조본연의 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복귀섭리를 이끌어 오는 심정의 하나님,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 나온 부모의 하나님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가정연합의 신학은 악에 대해 하나님의 정당함을 변증하는 신정론에서 나아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유의지의 인간이 하나님 창조목적의 완성을 위해 악의 현실을 마주하고 타파하는 책임적 자아가 되어 구원에 참여하는 신정론의 정치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