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주
白南柱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함경남도 갑산 성별 남 생년월일 1901년
[정의] 일제강점기 시절 참아버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던 새예수교회 목사.
[내용] 함경남도 갑산에서 태어나 단군신앙을 하다가 20대에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평양신학교 재학 시절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재능을 발휘하여 1930년 졸업할 때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원산의 마르다윌슨 여자신학교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스베덴보리 사상에 심취하여 교회의 부패와 경직성을 비판하고 신앙부흥운동에 동참하였다. 1929년부터 원산에서 신령역사를 하던 유명화와 깊이 교류하였다. 1930년 원산에 신학산(神學山)이라는 기도소를 열고 요한복음을 새롭게 번역해 강해했으며, 1933년 이용도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 새예수교회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1934년 ‘천국결혼’으로 새예수교회로부터 징계를 받고 퇴출당했으며, 17세의 김백문을 만났고, 1935년 평안북도 철산까지 맨발로 걸어갔다. 김성도와 교류하며 성주교단의 창립에 참여했지만 교단과 의견을 달리해 결별했으며, 김백문과도 멀어져 참아버님을 모셔야 하는 사명을 하지 못하였다. 해방 정국에 부인과 딸을 잃고 외아들을 동반하여 1946년 월남하였다. 춘천사범학교와 공주사범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49년 사망하였다.
☞ ‘유명화’, ‘이용도’, ‘김백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