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마리아
朴瑪利亞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강원도 강릉 성별 여
생년월일 1906.4.19
[정의] 기독교의 기반과 정치를 연결하여 섭리에 기여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으나 이를 알지 못하고 1954년 교회를 핍박한 여성 지도자.
[내용] 1906년 4월 19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어렵게 자랐다. 어머니가 개신교에 입문하여 전도사가 되고 난 후 경성의 한 교회에 맡겨져 성장하였다.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와 호수돈여고보를 졸업하였다. 1929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의 영어교사로 있다가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 유학 중 이기붕을 만났으며 귀국 후 이화여대 강사로 재직 중 1934년 결혼하였다.
1940년대 조선 YWCA에서 김활란과 같이 친일활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광복 후 1946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임용되고 대한부인회의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이기봉이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울특별시장에 임명되면서 영부인 프렌체스카와 가깝게 지냈다. 이러한 배경으로 1952년부터 이화여대 문리대 학장을 맡는 등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54년 이화여대의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통일교회의 새 진리를 듣고 변화되었을 때 정부와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사명이 있었으나 통일교회를 믿는 교수와 학생들의 퇴직·퇴학 조치를 내렸다. 1957년 이화여대 부총장에 임명되었으며 장남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양시키는 등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다. 1960년 4월 28일 가족과 함께 사망하였다.
☞ ‘김활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