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진
文興進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1가 성별 남
생년월일 1966.10.23
[정의] 참부모님 가정의 차남으로 교통사고로 성화한 후 영계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참자녀.
[내용] 1966년 10월 23일 참부모님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참부모님을 위한 효정을 가슴에 품고 성장하였다. 항상 참부모님의 안전을 걱정하여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면서 세계 최고의 보디가드가 되어 참부모님을 지켜 드리겠다고 말하였다. ‘Pain is good’과 ‘No pain, no gain’을 가슴에 새기고 노력하였으며, 형제들 사이에서 사랑을 실천하여 화동의 중심이 되었다. 다른 축복가정 자녀들에게 ① 부모님께 반드시 모든 일을 보고하라, ②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라, ③ 참부모님을 잘 모셔라, ④ 만물을 주관하라 등의 가르침을 주면서 효정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 1983년 12월 14일부터 23일까지 참부모님이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한국 8대 도시에서 승공궐기대회를 개최할 당시에 마지막 대회장인 광주에서 참부모님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정보가 있어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 시각 문흥진은 미국에서 축복가정 자녀 두 사람을 차량에 태우고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가 맞은편 차량의 운전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나게 되었다. 동승한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핸들을 반대편으로 꺾었다가 충돌사고가 나면서 의식을 잃었으며, 1984년 1월 2일 성화하였다. 참부모님은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참부모님을 가장 사랑하였던 차남이 참부모님을 대신하여 탕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장례를 승화(昇華)라고 부르도록 축복해 주었고, 2011년 성화(聖和)로 바뀔 때까지 축복가정의 죽음을 승화로 부르도록 하였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을 기념하여 1월 2일을 애승일로 제정하였으며, 1984년 2월 20일 박훈숙과 영계축복을 받게 하였다. 이후 2003년 제4차 이스라엘국 출발선포식을 하면서 ‘천총관 문흥진 필승’이라는 휘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