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국
文潤國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금산(錦山)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성별 남 생년월일 1877.1.30(음)
[정의] 참아버님의 종조부(從祖父)이자 독립운동가, 기독교 목사.
[내용] 1877년 태어나 한학을 수학한 후 1902년부터 1908년까지 덕흥의숙 한문교사,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정주읍 신안소학교 교사로 봉직하였다. 1910년 기독교 장로교회에 입교한 뒤 1913년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졸업하였다. 1916년 덕언면 덕흥교회 장로로 장립하였고, 1917년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19년까지 덕언면 덕흥교회 등지에서 목회를 하였다. 1919년 평북노회 조선독립운동 발기인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는 독립청원서에 전국 13도 대표 중 1인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독립선언문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서명하였고, 평북지역의 3·1만세운동을 지휘하였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뒤에는 1921년 일가와 교회 신도 등을 통해 독립자금 7만 환을 마련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으로 송금하였다. 요시찰인물로서 전국을 돌며 피신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1946년부터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장열리에 거처를 정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육성하였다. 1948년 이승만 정부가 구성될 때 헬기를 세 번이나 보내며 입각을 강권하였으나 고사하였다. 1958년 1월에 영면하였다. 후에 종손자인 문용기에게 현몽하여 정선의 주소를 알려 주어 1966년 생전의 행적을 확인하였으며, 1970년 4월 유해를 파주 원전성지로 모셨다. 1977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되었고, 1990년 12월 26일 독립유공훈장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1994년 12월 12일에는 선생의 애국적인 공로를 기리는 수훈 현창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2000년 제자 신만승이 선생의 한시를 정리하고 해석하여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유고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