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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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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dictionary_pt1-735

문선명

文鮮明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천지인 참아버님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

성별 생년월일 1920.1.6(음)

[정의] 인류의 구세주이자 메시아, 참부모로 온 천지인 참아버님.

[내용] 가문과 탄생

일제강점기인 1920년 음력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충부님 문경유와 충모님 김경계의 6남 7녀 중 차남으로 탄생하였다. 아명은 용명(龍明)으로서 탄생 전 충모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큰 용을 치마에 받는 태몽을 꾸었으며, 앞동산 소나무에 원앙새가 3년 동안 와서 울었고, 노간주나무에 금계가 우는 등 상서로운 일들이 많았다. ‘팔도강산에서 찾아오는 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후히 대접해 보내라.’는 집안의 전통이 있어 덕을 많이 쌓은 가문이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였다. 그러나 종조부 문윤국이 기독교 목사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집안의 재산이 줄고 가계가 차츰 어려워졌다. 조부인 문치국은 참아버님에 대해 “이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인즉 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돕도록 하라.”고 하였다. 충부님은 장남으로 태어나 법 없이 살 정도로 선량한 분이었고, 충모님은 오산학교 설립에 참여한 김백홍의 장녀로 여장부 같이 도량이 큰 분이었다.

성장과 메시아 자각

7세부터 13세까지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한 후 1934년 오산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다가 1935년 정주공립보통학교 4학년으로 전학하였다. 이 무렵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고 13남매 중 5남매가 갑자기 요절하는 등 가문에 안 좋은 일이 이어져 인생의 근본적인 여러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또한 대형님 문용수가 갑자기 아파 집안 전체가 장로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기도를 시작하였다. 오랜 산상기도 중에 1935년 4월 17일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의 현현을 경험했다. 이를 통해 메시아로서 자각하고 천명을 이루기 위한 진리 탐구와 자아 주관 등 섭리적 준비를 하게 되었다.

유학생활과 진리 탐구

정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4월 12일부터 1941년 3월 8일까지 서울 흑석동 경성상공실무학교에 다녔다. 자취를 하며 서빙고 오순절교회를 다니다가 1939년 가을 흑석동에 새예수교회를 설립하는 데 참여하였고, 주일학생들을 지도하는 교회학교 교사생활을 하였다. 1941년 3월 미래 섭리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4월부터 와세다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였다. 일본 유학 중에는 성경의 여러 의문을 탐구하기 위해 성경공부를 하면서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여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전시상황에 따라 학기가 반년 단축되어 1943년 9월 30일 조기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44년 3월 서울에 있는 가시마구미 경성지점 전기부에 취직하였으나 10월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경기도경찰부에 수감되어 고문을 당했다.

공식노정의 시작과 기독교계의 불신

1945년 8월 15일 한국의 해방과 함께 공식적인 선교의 노정을 출발하였다. 1945년 10월 하나님이 준비한 신령한 남성계를 대표하는 김백문을 찾아갔다. 김백문이 인도하던 예수교 이스라엘수도원으로 찾아가 6개월 동안 참여하였다. 그 결과 1946년 3월 김백문은 ‘솔로몬의 영광으로 오신 분’이라고 참아버님을 증거하였으나 이후로 모시고 따르지 않아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1946년 6월 6일 평양으로 가서 하나님이 준비한 신령한 여성계를 대표하는 허호빈을 만나고자 하였다. 당시에 허호빈이 구금돼 있던 대동보안서에서 그녀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만나지 못했다. 사회문란죄 및 간첩혐의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출감하였다. 하나님이 준비해 준 남북한의 신령한 집단들로부터 반대를 받은 뒤 ‘여호와의 부인’ 박을용을 통한 시련과 43일간의 진리를 찾기 위한 시련 그리고 흥남감옥에서 12제자를 찾기 위한 시련 등 3대 고난에서 승리하였다.

남하와 부산 개척시대

죽음의 수용소라는 흥남감옥에서 12명 이상의 제자를 찾아 예수님의 사명을 탕감복귀한 후 1950년 10월 14일 유엔군의 폭격 속에 흥남감옥에서 해방되어 평양으로 갔다. 평양에서 제자들을 수습한 뒤 1950년 12월 4일 제자 김원필과 박정화를 대동하고 남하하였다. 서울에서 머물던 중 1·4 후퇴로 부산으로 다시 피난하였다. 1951년 1월 27일 부산 초량역에 도착한 뒤 8월 범냇골에 작은 토담집을 짓고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성경의 비밀을 밝혀 낸 진리를 모아 ‘원리원본’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집필을 마친 1952년 5월 10일 강현실을 시작으로 이봉운과 이요한 등이 입교하였으며, 부산을 거쳐 대구와 서울로 개척전도가 전개되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과 선교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 세대문집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고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젊은 지성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해방과 분단을 겪으며 민족의 운명에 절망하였던 이들에게 ‘원리’의 말씀은 새로운 비전과 생명을 주었다. 이를 경계한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연세대 및 이화여대의 교수와 학생들을 신앙적 이유로 퇴직, 퇴학시키며 박해하였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근거 없는 악의적 소문을 만들어 비방하였다. 1955년 7월 4일 사회문란혐의로 구속되었으나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후 말씀의 열기가 더해져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었으며 1958년 일본, 1959년 미국으로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체계적인 ‘원리’ 강의를 위해 1957년 『원리해설』을 발간한 데 이어서 1966년 『원리강론』이 출판되면서 진리의 등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혼과 참가정

1960년 4월 11일 인류의 독생녀, 메시아, 참부모로 오신 한학자 참어머님과 성혼했다. 최초로 완성된 독생자와 독생녀의 성혼을 통해 하나님이 인류의 실체적인 참부모인 하늘부모님이 될 수 있는 출발의 기대가 마련되었다. 이후로 한학자 참어머님과 7남 7녀를 낳아 참가정을 이루었으며, 복귀섭리의 완성자로서 인류 구원의 문을 열고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창조이상을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승공운동과 냉전의 종식

하나님의 실재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1960년대부터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대만 그리고 미국까지 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와 공산주의 확대 저지를 위한 승공운동을 펼쳤다. 특히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의 중심이었지만, 1960년대에는 가치관의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이에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정신혁명을 외치면서 청년세대에게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주었다. 1974년 9월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대회, 1976년 6월 뉴욕 양키스타디움대회를 개최했고, 9월 워싱턴모뉴먼트대회에는 30만 명의 청중이 운집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공산주의 체제는 70년을 넘길 수 없기에 소련의 공산주의가 199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언론과 경제 그리고 정치 등을 통한 냉전 종식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공산주의가 종식된 이후에 공산세계의 사람들이 겪게 될 가치관의 혼란을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종교 화합과 하나의 세계

참아버님은 종교에 대해 하나님의 실재를 알려 주고 창조본연의 세계로 인류를 인도하는 방편으로서 모든 종교는 각기 다른 자연환경과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왔다고 그 가치를 존중하였다. 이러한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종교는 창교의 정신으로 돌아가 일신하여야 하며, 이웃 종교의 전통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하나의 평화세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종교의 화합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미국에서 종교 탄압으로 댄버리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전 세계에서 모인 종교 지도자 3천500여 명이 종파를 넘어 ‘종교 자유 수호를 위한 시위’를 벌이며 참부모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후로 종교계 성직자 축복결혼식과 이스라엘 평화대행진 등 종교 화합을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하였다.

공생·공영·공의주의와 평화세계

1980년대 냉전종식을 위한 활동을 하는 동시에 이후의 세계가 진정한 평화세계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특히 냉전의 상징이었던 한반도 분단을 해결하고 평화를 이룰 때 평화세계가 시작된다고 보고 1990년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단독회담, 1991년 김일성 주석과 평화회담을 가졌다. 소련에서는 공산주의 종언 이후 소련 청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3만여 명의 청년교육을 하였으며 북한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핵사찰 수용, 남북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남북정상회담 등을 합의하고 이를 추진하였다. 이후로 회담에서 약속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북한을 한 형제로서 사랑하여 신뢰를 구축하였다. 나아가 1990년대 이후에는 세계가 공생·공영·공의할 수 있는 평화세계가 될 수 있도록 평화운동에 매진하였다.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UN이 각국의 정치적 이해에 따른 외교활동의 장에 머무는 것을 지적하며 각국의 종교·NGO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평화UN을 제창하였으며, 국경선 철폐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마라토너와 같은 삶

참아버님은 천명을 받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마라토너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회상하였다. 하나님이 이상한 평화왕국을 실현하기 위해 2001년 1월 13일 ‘하나님왕권즉위식’을 거행하였으며, 2006년 6월 13일 ‘하나님입궁대관식’을 올렸다. 이러한 기반 위에 2013년 1월 13일을 천일국이 실체적으로 개국하는 날인 기원절로 선포하였다. 기원절을 향해 중단 없는 실천을 해오던 중 2012년 9월 3일 성화하였다. 성화하기 전까지 말씀을 기록한 『문선명선생말씀선집』 등의 책이 1천여 권에 달하며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를 출판했다. 성화 이후 주요 말씀을 정리하여 천일국 경전으로 『천성경』(2013)과 『평화경』(2013) 그리고 『참부모경』(2015)이 편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