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박해시대
로마帝國 迫害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로마제국이 초기 기독교를 박해한 400년 기간.
[내용] 로마제국이 정복전쟁을 펼치며 영토를 광대하게 확장해 나가던 동안 정복지의 문화와 신을 인정하는 다문화, 다신교 정책을 펼쳐 제국의 통합을 도모하였다. 로마 황제에 대해 마땅한 경의를 표하고 국가신(國家神)들을 위한 예식에 참여하는 한 각 민족이 행하는 종교예식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런데 유일신을 신봉하며 초민족적이고 보편적인 교리를 추구하는 기독교의 성장은 로마제국에 지속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을 질서유지를 위한 권력기관으로 인정하고 국법을 철저히 준수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들을 박해할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 황제들이 제국의 내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민중들이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분노를 계획적으로 이용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광범위한 박해가 지속되었다.
『원리강론』은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2년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공인할 때까지 이어져 온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 기간을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으로 명명한다. 섭리적 동시성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하여 이루지 못했던 믿음의 기대를 민족적인 것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의 사탄 분립 기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유대 민족이 이루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에게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이 있었던 것이다.
☞ ‘로마제국’, ‘섭리적 동시성시대’, ‘애급고역 400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