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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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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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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東學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1860년 수운 최제우(崔濟愚)가 새롭게 창시한 한국 근대 민족종교.

[내용] 1860년(철종11)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서학에 대항하여 동쪽의 도(道)를 주창하며 창시한 한국 근대 민족종교이다.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로 인한 민생파탄과 그로 인한 잦은 민란, 외세압박으로 사회적 불안과 민중의 고통이 심해 가던 구한말, 경주에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난 최제우는 자신의 처지와 시대상황 속에 고민하다 30세에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의 길을 찾아 전국 팔도를 누비며 구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다 1860년 경주 구미산 용담에서 한울님의 음성을 듣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고, 그 뒤 1년여 간 한울님과 문답하며 무극대도를 깨닫고 포덕을 시작하였다. 유·불·선의 전통종교가 쇠락하여 새로운 희망과 구제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서양의 천주교도 배타성과 공격성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기운이 쇠한 선천문화를 개벽할 수 있는 새로운 도로서 동학을 창도한 것이다.

동학은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 제세구민(濟世救民)의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의 사상으로 당시의 신분제, 적서제도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만민 평등사상을 주창하면서도 실천적으로는 21자(字) 주문, 칼춤, 부적 등 대중적인 방식으로 제병생과 영세무궁을 추구하도록 하여 민간에 널리 퍼져 나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조정은 포교를 시작한 지 3년째인 1863년 최제우를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처형시켰다. 2대 교주가 된 해월 최시형(崔時亨)은 최제우가 남긴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고 사인여천(事人如天), 이천식천(以天食天), 양천주(養天主)사상으로 교리를 발전적으로 체계화하였으며 포를 접주가 통솔하는 접주제로 조직하였다. 그러한 기반 하에 신도들의 교조신원운동이 조직화되고 민중의 불만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결합하여 반 왕조적 신분혁파와 사회개혁 그리고 반 외세를 향한 급진적 농민운동으로 전개되며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동학혁명으로 수많은 신도가 희생되며 교세가 약화되고 최시형도 처형되자 3대 교주가 된 의암 손병희는 시천주, 사인여천 사상을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종지로 교의화하고 명칭을 천도교로 바꾸어 교리와 교단을 정비하였다. 또한 천도교 대헌을 반포하고 정기 시일식, 성미제도 제정 등 교단을 근대화하여 교세 회복에 힘썼다. 천도교는 이후에도 3·1운동을 주도하며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 잡지를 중심한 여성, 어린이, 농민운동에 힘썼다.

동학은 교조의 종교적 경험과 경천사상을 기반으로 왕조의 기운이 쇠했다는 시운설에 힘입어 반 왕조적이고 혁명적인 개벽사상과 사회 개혁적 반 봉건주의를 지향한 한국 근대 민족종교와 신종교의 효시로서 이후 등장한 민족종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 ‘최제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