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臺灣
항목체계 해외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일본의 6지구인 선교국.
[내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일본의 6지구로 소속되어 있는 선교국이다. 1965년 9월 28일 참아버님이 제1차 세계 순회 중에 처음으로 대만을 방문하여 타이베이 식물원에 성지를 책정하면서 선교국 중 하나로 축복을 받았다. 1967년 6월 26일 정인숙 선교사가 파송되면서 대만 선교가 시작된 이후 한국에서 김효숙 선교사가 파송되면서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초창기의 식구들 중에 한국인 강용무·박치성 부부가 있으며 대만인은 린슈센, 촹옌치, 판만츠, 린첸인, 창칭칭(Chang Ching Ching), 린리촨 등이 전도되었다. 선교의 결실로 1971년 4월 12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타이베이시에 종교단체로 공식 등록하였고, 초대회장은 창칭칭 교수가 역임했다. 1971년 5월 14일 구보키 오사미 일본회장은 대만이 유엔을 탈퇴해서는 안 된다는 참부모님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장개석 총통을 만났으며, 일본이 중화민국 지지를 위한 행동을 취하도록 지시하였다. 당시에 공산주의 적화를 저지하기 위한 아시아 연대를 위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이 승공운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만을 위해 1972년 미국 가정연합 식구들이 유엔본부 앞에서 3일 금식을 단행했고, 일본 식구들도 중화민국을 지지하며 7일 금식을 하는 등 세계적인 연대활동을 하였다. 1972년 4월 말 참부모님의 말씀으로 대만에 파견된 카와사키 미치코(Kawasaki Michiko) 일본 의료봉사단장은 장개석 총통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3일 정성과 철야기도의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이후 장개석 총통은 건강이 호전되자 그 고마움의 표시로 구오 얀펜(Guo Yan Fen) 대만 국무총리를 통해 감사의 서신을 보내왔다.
1973년 12월에는 국립 대만대학교 원리연구회 활동이 학내로 급속도록 퍼져 나갔다. 지도교수로는 창칭칭 교수, 원리연구회 초대회장으로는 황타춘(Hwang Ta Chun) 씨가 역임하였다. 1975년 18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에 대만에서 2쌍이 참석하여 대만 현지인에 의한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1977년 7월 비자 발급이 거부된 정인숙 선교사는 대만을 떠나 일본으로 파송되었으며, 일본에서 온 1800가정 장궈신(Chang Kuei Hsin) 씨가 제2대 대만 통일교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제7차 세계평화국제학술회의 개최, 1984년 제5회 아시아초교파회의 참석 등 광범위한 선교활동을 펼쳤으나 대만 정부로부터 종교적 박해가 시작되었다. 결국 1977년 ICUS 회의 폐막 후 대만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는 모두 철수하였다.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1979년 3월 5일 장궈신 회장의 지시로 12명의 축복가정이 세 명씩 한 팀을 이루어 타이베이, 티이중, 타이난, 카오슝에 교회를 열어 전국적으로 종교활동을 확대하였다. 이후 제3대 대만회장인 황타춘 씨와 홍보국장 창촨퐁(Chang Chuan Fong) 등 대만 식구들의 노력으로 1990년 3월 15일 내무부 부장관의 명의로 통일운동금지령 철회가 발표되었으며, 그해 3월 23일 내무부로부터 종교활동금지 해제공문을 받았다.
이후 1993년 12월 4일 참어머님은 리우성환(Liu Sung Fan) 입법원장의 초청으로 ‘참부모와 성약시대’를 주제로 대만 타이베이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였다. 1995년 12월 4일 참부모님이 대만을 방문하여 ‘참가정과 나’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1999년에는 대만 문화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만 정부는 대만 가정연합의 초교파적인 이념과 세계평화를 위한 활동을 인정하여 2011년 9월 5일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식에서 총통으로부터 ‘100년 적우종교단체 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모범종교단체로 선정되고 행정원장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아 2012년까지 대만 정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종교단체상’을 12년 연속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