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필
金元弼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양 성별 남
생년월일 1928.9.2
[정의] 참부모님의 평양 제자로 부산 남하 노정과 피난생활을 보좌하고 첫 번째로 축복을 받은 축복가정의 맏형.
[내용] 김원필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에서 중요한 초창기 인물들 중 한 명이다. 1946년 3월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했고, 그해 7월 만 18세에 참아버님을 만나 성화할 때까지 일심으로 모신 수제자이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에서 참아버님이 고난을 당할 때 감옥에 면회를 가는 등 가까이에서 모셨으며, 1950년 흥남감옥을 나와 부산까지 남하하던 노정을 함께했다. 부산에서 범냇골 토담집을 짓고 참아버님과 같이 생활하며 ‘원리원본’ 집필을 도왔고, 미국 병사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며 경제적인 기반을 닦았다.
1960년 정달옥과 3가정으로서 축복을 받았으며 1963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 이사장, 1970년 일화 초대대표이사, 1979년 미국 회장 및 가정교회운동 책임자, 1986년 유럽 대륙회장, 1991년 일본 총회장, 1994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초대회장 등을 역임하며 교회의 책임을 맡았다. 노르웨이 국가메시아로 통일가의 충신이자 절대복종의 산증인이었다. 특히 조용한 성격으로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서 일본 식구들을 따뜻하게 사랑해 주어 일본 식구들의 존경을 받았다. 2010년 4월 7일 선교지였던 일본에서 만 81세의 일기로 성화하였다. 이때 “내가 가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하는 내 아내이다. 그러니 바람과 같이 묻어 다오.”라고 유언하였다. 세계성화식으로 거행되었으며, 참부모님은 ‘축 축복가정 장형 김원필 천정봉신자되소서!’라고 휘호를 하사하였다.
☞ ‘정달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