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
郭魯弼
항목체계 인물
성별 남
생년월일 1923년
[정의] 서울 명수대 새예수교회 시절과 경기도경찰부 수난 당시에 참아버님과 함께한 동지이자 참아버님 생애노정의 증언자.
[내용] 곽노필은 참아버님께서 서울 명수대 새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가까이 모신 사람이자 해방 직전 경기도경찰부 수난 때 동반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한 동지였다.
참아버님이 1938년부터 1941년까지 서울 흑석동에 있는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여 명수대 새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참아버님의 열정적인 신앙생활에 감화를 받아 기독교 신앙을 열심히 하였다. 참아버님보다 세 살 연하로 참아버님을 모시고 따랐으며, 이때의 인연으로 참아버님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흑석동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교류하였다. 1944년 10월 참아버님이 독립운동 혐의로 경기도경찰부 형사들에게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할 때 참아버님을 면회하러 갔다. 이렇게 면회를 갈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받아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참아버님은 출옥 후 곽노필의 직장을 제일 먼저 찾아갔다. 흥남감옥에서 출옥한 후 1950년 12월 27일 흑석동에 도착하자마자 곽노필의 집을 찾을 정도로 참아버님이 각별하게 생각한 후배였다. 참아버님이 피란시절 부산에 도착한 뒤 제일 먼저 찾은 사람도 곽노필이었다. 참아버님은 부산 도착 후 3일 동안 곽노필의 집에서 말씀을 전했으나 그가 장교시험에 합격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후에 입교하여 참아버님의 명수대 새예수교회 시절부터 두 번의 옥고, 부산 피란시절까지 증언하여 교회사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