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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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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dictionary_pt1-187

경기도경찰부

京畿道警察部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1944년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참아버님을 고문한 일제강점기의 도경찰부.

[내용] 참아버님이 1944년 10월경 특고형사들에게 연행되어 이듬해 2월까지 혹한기에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고초를 겪게 된 사건을 담당한 기관이다. 당시 경기도경찰부는 세종로 총독부청사 앞에 위치해 있었다. 참아버님이 경기도경찰부에 끌려가 수난을 겪은 이유는 일본 유학시절의 지하운동 때문이었다. 당시에 관계된 인물과 구체적인 지하운동의 사실들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참아버님은 경기도경찰부에서 ‘판자 쪼가리로 조이고 뒤틀어 짜기’, ‘두 팔을 뒤로 묶고 매달아 치는 비행기태우기’, ‘콘크리트 바닥에 눕혀 찬물을 끼얹고 무한정 물 먹이기’, ‘군홧발로 배 짓이겨 밟기’, ‘각목을 무릎 안쪽 오금에 끼우고 징 박은 가죽구두로 짓밟기’, ‘열 손가락 전기고문’, ‘15분간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평생 잊지 못할 고문’ 등을 12시간에서 14시간까지 계속해서 받았다. 그러나 참아버님은 목숨을 걸고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그때의 일기장에 기록돼 있던 지인들은 무고하게 연루자로 연행되기도 했다. 이듬해 2월 참아버님은 반사지경으로 석방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 일제의 문화통치와 전시체제하의 최고경찰관청은 총독이었다. 그 보조기관으로 정무총감을 두고 예하에 경무국장을 배치하여 경무국을 운영하였다. 지방의 최고경찰관청인 13개 도 도지사의 보조기관으로는 도경찰부를 두어 예하 부·군의 경찰서를 관장하게 했다. 경기도경찰부는 이에 따라 서울을 포함한 경기일원 각 경찰서들을 실질적으로 관할하던 도경찰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