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
韓鶴子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천지인참어머님
출신지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신의리 26
성별 여 생년월일 1943.1.6(음)
[정의] 인류의 구세주이자 독생녀, 참부모로 오신 천지인참어머님.
[내용] 가문과 탄생
하나님은 독생자인 참아버님을 이 땅에 보내고 독생녀 실체성신인 참어머님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 신령교단을 세워 준비하였다. 하늘의 신부로 준비되었던 2천 년 기독교 역사는 재림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한국의 신령교단과 연결되었던 것이다. 특히 조원모 할머니와 홍순애 대모님은 일제의 탄압 속에 기도와 정성을 들이던 신령교단들 중 여성계 신령교단인 성주교의 김성도와 복중교의 허호빈을 만나 기도하여 참어머님을 모실 수 있는 가문으로서 정성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외조모 조원모(趙元模)는 조상들 중 조한준이 사재를 내어 평안북도 정주의 달래강에 큰 돌다리를 만들어 공덕을 쌓아 후손들 중에 하늘의 딸이 올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신여성이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하면서 진정한 믿음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홍유일(洪唯一)과 조원모의 장녀로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대모님 홍순애(洪順愛)는 모친의 인도에 따라 여러 신령한 교단들을 찾아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성주교와 새예수교, 복중교 등에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신령한 신앙생활을 한 외조모와 모친의 정성이 모인 가운데 1943년 음력 1월 6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신의리 26번지에서 부친 한승운(韓承運)과 홍순애의 외동딸로 탄생하였다.
메시아 증거와 남하
홍순애 대모님이 재림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앙생활에 전념하여 참어머님은 어린 시절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신앙생활을 최우선으로 하였던 외조모와 대모님의 보호 아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자연스럽게 체화하였다. 대모님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신령교단인 성주교와 복중교에서 많은 정성을 들이고 헌신하던 중 참어머님이 여섯 살 되었을 때, 허호빈의 어머니가 ‘하늘의 신부가 되실 분’이라고 축복하였다. 모든 신령한 역사적 기반이 대모님을 거쳐 참어머님에게로 승계된 것이다. 이후 1948년 북한 공산당국의 종교 탄압으로 외조모와 대모님이 11일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그 후 공산당이 기승을 부리게 되어 더 이상 북한에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절감한 외조모와 대모님을 따라서 참어머님이 남하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과 신앙생활
참어머님은 남하 후 서울 효창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대구, 서귀포, 춘천 등을 거치면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대구에서 지낼 때에는 낯선 남자 한 사람이 참어머님을 보고 ‘천지간에 신성한 분’이라고 증거하는 등 많은 영적인 증거들이 이어졌다. 또한 춘천 봉의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매우 정숙하고 친절하며, 어딘지 고상한 태도가 보이고, 급우들 중 가장 침착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용히 사색하는 성품으로 졸업할 때 우등상을 받았다. 1956년 4월부터 1959년 3월까지 성정여자중학교를 다녔으며, 1959년 3월 서울의 성요셉 간호고등기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성장하는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필코 이뤄드리겠다.”고 결심 하였다.
참아버님과의 만남과 성혼
참어머님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만 13세인 1956년 3월 대모님을 따라 청파동교회에서 참아버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참아버님은 이름을 물으신 후 “한학자가 한국 땅에 태어났다.”를 세 번 반복하고 “하나님, 한학자라는 이렇게 훌륭한 여성을 한국에 보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다. 1960년 2월 성혼을 준비할 때 여러 사람들에게 계시가 내려 참어머님이 오신 것을 알게 되었고, 3월 27일 약혼식을 거쳐 4월 11일 참아버님과 성혼하였다. 이 성혼식은 완성된 아담으로 오신 참아버님과 완성된 해와로 오신 참어머님이 참부부로 만나 인류의 참부모가 된 세계적이고 천주사적인 성혼이었다. 성혼 이후 7년의 기간은 가정적으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기간이었는데, 참아버님과 절대적으로 하나 되어 믿음과 사랑의 실체가 되었다. 이러한 기준으로 7년 노정의 내적 승리를 통해 1968년 1월 1일 하나님의 날이 선포되었다. 또한 예진과 효진을 시작으로 14명의 참자녀를 출산, 양육하였다.
신앙의 모체와 지승일
참어머님은 재림주님을 향한 절대적 신앙의 기반 위에 탄생하여 성장하면서 절대사랑·절대신앙·절대복종의 신앙을 체화하였다. 성혼 이후 “하나님의 소망을 내가 반드시 이뤄드리겠다.”는 결심으로 참아버님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모체가 되었다. 1977년 만 33세가 되었을 때 참부모로서 공식적인 생애를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의 지승일(地勝日)이 제정됐으며, 하늘과 땅이 하나 된 새로운 시대가 선포되었다.
참부모의 전통
성혼 후 40년 동안 참아버님과 하나 되어 모든 일정을 함께하는 기준을 세운 기반 위에 1990년 한국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참부모가 선포됐으며 1992년에는 세계 앞에 인류의 참부모, 구세주, 재림주로 오셨음이 선포되었다. 1992년부터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의 직분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참어머님의 길을 걸었다. 7년 동안 세계를 순회하며 참부모님의 사랑을 전하였고, 1999년 6월 14일 ‘참부모님 천주승리 축하선포 표창패’를 받았다. 표창패에는 “하나님의 특명과 복귀섭리역사의 결실로 맺어진 본연의 하나님의 자녀이며 인류의 참된 어머니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하늘 앞에 참된 자녀의 사명, 남편 앞에 참된 부인의 사명, 그리고 자녀 앞에 참된 부모의 사명”을 완수하여 참부모로서 영원한 전통을 세우셨다는 내용이 담겼다.
천지인참어머님
1992년 세계적인 참부모 선포 이후 7년 뒤인 1999년 참아버님과 참부모로서 천주적 승리를 거두고 7년 뒤인 2006년 6월 13일 천주평화의 왕 참부모 입궁대관식을 거행하며 평화의 왕으로서 세계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6월 19일 하나님의 실체대상으로 참부모님이 최종 일체가 된 것을 선언한 가운데 참부모님 최종일체 완성·완결·완료를 선포하셨다. 2012년 참아버님 성화 이후 중단 없는 전진을 선포하고 하늘의 참아버님과 일체가 되어 2013년 1월 13일 천일국 기원절을 선포하였다. 이후 천일국 정착을 위해 참아버님과 일심·일체·일념·일화·일핵을 이룬 자리에서 천지인참부모님으로 천일국 섭리를 이끌고 있다. 천일국 3대 경전을 편찬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인재 양성과 환경을 창조하며 하나님을 모시는 항구적인 평화세계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