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4세
Philippe IV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교황권의 몰락과 절대왕권을 수립한 프랑스의 카페왕조 11대 왕.
[내용] 십자군 원정 후 왕위에 올라 절대왕권을 강화한 프랑스 왕이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8차에 걸쳐 진행된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나면서 교황권이 크게 약화되었다.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고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면서 종교에 대한 회의가 증가하여 종교를 떠난 사상이 발전하는 등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런 시기에 왕위에 오른 필립 4세는 개인적으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십자군 원정에서 할아버지가 전사했고, 어린 시절 어머니까지 사망하여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왕권을 강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지식인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국가 체계를 세워 갔으며 왕실의 자문기구인 국가평의회를 설치하여 국정의 방향을 잡았다. 국가의 기틀을 잡은 후 영토를 넓히기 위해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이면서 성직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교황 보니파카우스 8세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교황은 성직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를 금지시켰으며, 필립 4세는 교황청으로 가는 모든 물자의 교역을 끊는 보복조치를 하였다. 결국 교황은 필립 4세의 할아버지 루이 9세를 성인으로 추증하고, 플랑드르 전쟁을 지지했으며, 성직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도 승인하였다. 그러나 파미에르 주교의 투옥 문제로 다시 대립하여 필립 4세는 소수 특권층인 사제·귀족·도시의 대표로 구성된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교황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의 지지를 강화하였다. 이후로 교황 반대파들이 아나니로 휴양을 와 있던 교황을 습격하면서 보니파키우스 8세는 충격으로 수주 후 사망하고 말았다. 교황을 습격한다는 것은 중세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승기를 잡은 필립 4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프랑스 출신 클레멘스 5세를 교황의 자리에 앉혔다. 클레멘스 5세가 로마가 아닌 리옹에서 즉위식을 가졌으며 아비뇽에 교황청을 설치하면서 가톨릭은 이후 70년 동안 프랑스 왕권에 완전히 장악되었다. 필립 4세는 유태인을 박해하고 성전기사단을 해산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넓은 영토와 국민적 지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프랑스 제1권력자가 돼 절대왕권의 시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