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아주의
他我主義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나와 타인은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어 나눌 수 없는 하나가 되어 공생·공영해야 한다는 사상.
[내용] 타아주의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2000년대 들어 중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으로서 참사랑의 의미를 보다 깊은 차원에서 설명한다. 참부모님은 2003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은 위타주의(爲他主義)가 아니라 타아주의(他我主義)라고 선포했다. 위타주의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이기주의를 교정하기 위해 복귀섭리의 과정에서 필요한 사상이었으며, 인류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하나님 창조이상의 세계는 타아주의 세계라고 말씀했다.
기존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사상은 개인주의와 위타주의, 또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틀로 창조와 타락 및 복귀를 설명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자기중심적인 악한 태도이며, 위타주의는 타인을 위하는 참사랑의 태도이므로 인간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참사랑의 위타주의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참사랑의 단계는 타아주의로 규정된다. 따라서 인간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위타주의를 거쳐 타아주의로 완성해야 한다.
이것은 위타주의가 참사랑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타아주의는 참사랑의 본질이 완전히 실현된 전체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위타주의는 그 전체 중에서 참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으면서도 타락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특별히 별도로 강조한 개념이었다. 즉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중심한 타락성을 극복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고 상대를 위하라고 교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먼저 상대를 위한다는 참사랑의 본질은 담고 있으나 참사랑의 전체 의미를 온전하게 담지 못한다. 참사랑은 결국 나와 상대가 서로 위하는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이므로 상대가 없으면 안 되고, 내가 없어도 안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모두 함께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양자가 서로 먼저 위하는 참사랑을 해야 한다. 이러한 참사랑의 전체 의미를 담은 개념이 바로 타아주의이다.
타아주의는 하나님 자신의 참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정지의(情知意)를 가지신 분이며, 그 중심은 사랑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사랑의 심정이다. 이 사랑의 심정은 억누를 수 없는 정서적 충동으로서 하나님의 정·지·의를 자극하여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동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분이며, 참사랑의 본체이다. 또한 하나님은 참사랑 자체로서 인간과 피조세계의 참사랑 근원이다. 그런데 사랑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며, 상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아무리 자신 안에 사랑의 심정이 있어서 사랑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으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실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절대자 하나님도 사랑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하나님도 실체적인 사랑의 대상이 있어서 그와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과 피조세계를 창조한 동기이다.
참사랑은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은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합성일체화하여 하나의 유기체로서 사랑의 기쁨을 함께 누린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체로서 사랑의 대상으로 자신을 닮은 인간을 가장 가까운 관계인 자녀로 창조했다. 그리고 자녀인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닮은 피조만물을 창조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자녀인 인간과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일체가 되어 함께 영원히 살아가면서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창조주이며,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다. 거룩하고 절대적인 창조주와 유한한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참사랑이다. 하나님은 대상과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일체가 되고자 한다. 인간이 성장 기간을 지나 완성되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룰 수 있게 된다. 하나님과 완성된 인간이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완성된 인간은 하나님적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런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유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적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는 것을 신인애일체라고 한다.
하나님과 인간이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하나님은 마음과 같고, 인간은 몸과 같다. 하나님 창조목적의 궁극적 단계는 하나님이 자신과 일체를 이룬 인간을 자신의 몸으로 삼아 그를 통해 피조세계에 현현하여 실체적으로 참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몸과 같은 인간은 하나님적 가치를 가지고 제2의 하나님이 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인 인간이 자신과 분리되어 별도의 피조물로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으며, 하나님 자신과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 자신이 되어 함께 살기를 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외적인 주류 속성이다. 하나님의 내적인 주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이며, 외적인 주류 속성은 창조성·주체성·관계성·통일성이다. 하나님의 내적인 참사랑이상을 외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외적인 주류 속성이다. 창조성은 하나님이 자신을 완전히 투입하여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주체성은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에 대해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관계성은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을 먼저 위해주며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하는 것이다. 통일성은 하나님과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이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하여 일체를 이룸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반드시 수수작용을 거쳐 일체화를 가져오며, 하나의 유기체로 동등한 가치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아주의의 원형이며 ‘원리’이다. 나와 상대가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나와 상대는 별도의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상대도 곧 나인 것이다. 나와 상대는 모두 나로서 상대를 위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하는 것과 같다. 상대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다. 나와 상대는 더 이상 분리된 두 개가 아니라 수수작용을 통해 합성일체화한 하나이며, 이 하나는 큰 나이다. 큰 나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그 유기체의 각 부분은 필연적으로 공생·공영한다. 참사랑은 나와 상대가 하나를 이루어 큰 나가 되어 기쁨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참사랑을 중심한 타아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품을 실체적으로 전개하여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참사랑의 타아주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정·지·의의 존재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은 참사랑을 통해 기쁨을 느끼려는 정서적인 충동 곧 참사랑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종적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의 심정에 공명하여 하나님과 참사랑을 주고받으며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횡적으로 인간들 사이에 하나님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어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기쁨을 느낀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피조만물과 참사랑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기쁨을 느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이성성상을 분립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횡적인 참사랑의 관계는 부부이며, 이것으로부터 출발하여 형성되는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관계가 확장하여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사랑이 된다.
이와 같은 창조본성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의 대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감으로써 최고의 기쁨을 느끼고자 한다. 나는 타인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참사랑을 주고받아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큰 나가 되어 함께 살면서 참사랑의 기쁨을 함께 누린다. 타인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며, 타인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된다. 타인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삶 속에서 나도 진정으로 기쁨을 느낀다. 함께 산다는 것 안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나도 함께 기쁨을 느껴야 한다.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여 상대를 위해 참사랑을 줄 수 없고 참사랑의 기쁨을 느끼지도 못한다면, 나와 상대가 하나를 이룬 큰 나 속에서 상대는 기쁘지 못하고 큰 나 전체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가 하나 된 큰 나 전체의 공생·공영과 기쁨을 위하여 나도 함께 온전히 존립하며 공생·공영함으로써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참사랑으로 상대를 위해주면, 반드시 상대로부터 더 큰 참사랑이 돌아온다. 이러한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상대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며, 나의 기쁨은 상대의 기쁨이 된다. 큰 나를 구성하는 각 개체가 행복할 때, 비로소 모든 개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일정한 성장 기간을 거쳐 완성됨으로써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게 된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참사랑의 타아주의를 체험하고 배우며 훈련할 수 있는 교육장소는 가정이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심정은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등 4대 사랑과 그것의 심정권인 부모의 심정, 부부의 심정, 자녀의 심정, 형제자매의 4대 심정권으로 나타난다. 가정은 타아주의적 참사랑이 실천되는 최소단위의 삶의 토대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그리고 형제자매는 참사랑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모두 함께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 가정에서 어느 한 구성원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구성원들도 행복하기 어렵고, 가정 전체가 행복하기 어렵다. 타아주의는 가정에서부터 실현되어 세계로 확산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에서 태어나 창조본연적인 자녀의 심정, 형제자매의 심정, 부부의 심정, 부모의 심정을 체험하며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함으로써 원숙한 참사랑의 타아주의적 인격을 갖추게 된다. 사랑과 심정은 체험함으로써 온전히 배울 수 있다. 가정에서 이러한 타아주의적 인격을 갖춘 사람들은 사회와 세계에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자신과 타인을 연결된 상호의존적 존재로 보며,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나와 타인은 하나가 되어 함께 참사랑의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참사랑으로 통일된 인류 대가족의 창조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나아가 가정에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훈련한 사람은 하나님 참사랑의 심정과 공명하게 되어 신인애일체의 경지에서 하나님과 함께 참사랑의 기쁨을 누린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횡적으로 더욱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참사랑의 이상을 완성하게 된다.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최종적 완성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만물이 참사랑으로 종횡으로 일체를 이룬 가운데 큰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타아주의를 완성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대이다.
타아주의는 인간과 피조만물의 사이에도 적용된다. 하나님은 인간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간을 닮은 피조만물을 창조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피조만물과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주관적 사위기대를 이루어 조화로운 일체가 되어 함께 기쁨을 누린다. 이때 나와 일체가 된 피조만물도 내가 되며, 함께 더 큰 나가 된다. 나는 또 다른 나인 피조만물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며, 그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기쁨을 나눈다. 이러한 의식이 전 피조세계를 대상으로 확장되면 나와 전 피조세계는 일체이며, 전 피조세계는 곧 나임을 느낀다. 나는 우주적인 나로 확장되고 우주와 함께 우주적인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타아주의는 위타주의와 차이점을 갖는다. 개인주의는 존재론적으로 나와 상대가 분리된 실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분리된 실체는 다른 존재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다른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다. 서로의 관계는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설혹 그런 관계가 있더라도 부차적이고 우연일 뿐이다.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전제 위에서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위타주의도 동일한 전제를 갖고 있다. 상대를 위하는 것과 나를 위하는 것은 별개이다. 상대를 위하는 것과 나를 위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양자택일의 내용이 된다. 이것은 위타주의도 나와 상대가 분리된 실체라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적인 타락성을 청산하기 위하여 먼저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을 위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참사랑의 본질인 상대방을 위하는 것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위타주의 사상을 세워 타락한 인간을 지도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참사랑의 완성은 위타주의와 다른 존재론적 전제 위에서 성취된다. 나와 상대는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반드시 상호의존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연체로서 필연적으로 참사랑을 주고받아 일체를 이루도록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타아주의에는 나와 상대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함께 들어가 있다. 내가 상대와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불가분의 관계가 맺어지고, 나와 상대는 함께 더 큰 나를 이루게 된다. 타아주의는 참사랑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 준다. 이제 참부모님을 통해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섭리역사의 단계가 되었기 때문에 타아주의가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참사랑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위타주의 단계를 넘어 타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로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는 위와 같은 타아주의적 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을 닮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 곧 마음과 몸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이라는 두 실체로 구성되며, 영인체는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인 생심과 영체로 존재하고, 육신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인 육심과 육체로 존재한다. 지상 인간의 마음은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과 육신의 마음인 육심이 종합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에는 생심의 지향성과 육심의 지향성이 종합되어 있다. 생심은 하나님과 연결된 인간의 핵이며, 이것에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심정이 발원한다. 생심은 참사랑의 심정에 기초하여 전체를 위하는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고, 육심은 자체의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주와 성 및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창조본연의 완성된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이 주체와 대상으로 수수작용하여 통일되어 있다. 생심이 육심을 주관하며, 육심은 생심을 따른다. 이러한 인간은 전체를 위하려는 참사랑의 삶을 먼저 추구하며, 그것을 위한 물질적 생활을 추구한다. 참사랑의 삶이 목적이며, 물질적 생활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 상태가 참사랑의 인격을 완성하여 타아주의를 실천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중심하고 의식주를 위한 물질을 우선 추구하며, 참사랑과 미·진·선의 가치는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다. 생심의 기능은 물질적 욕망에 억눌려 있으며, 따라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이 올바로 실천되지 못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가치적 생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락한 인간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물질적 생활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 결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진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을 창조본연의 타아주의적 인간으로 복귀하는 것은 역전된 생심과 육심의 관계를 본래의 관계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타주의는 타락한 인간이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을 위하도록 강조함으로써 자기를 중심한 육심의 욕망을 극복하고 타아주의적 본성을 회복하도록 이끌어 왔다. 타락한 인간은 위타주의 단계를 거치며 자기중심적인 타락성을 청산한 후 나와 타인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타아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의 삶을 통해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인격을 완성한 후 육신이 노쇠해지면 그것을 벗고 영인체로서 무형 실체세계인 영계로 옮겨가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삶을 살아간다. 천상천국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타아주의 참사랑이 궁극적으로 실현된 영원한 세계이다.
셋째로 인간과 만물은 개체적 본성과 연체적 본성을 함께 지니도록 창조되었으며, 이것은 타아주의의 또 다른 존재론적 토대이다. 인간과 피조만물은 개성진리체인 동시에 연체로 창조되었다. 개성진리체란 하나님이 부여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내적 사위기대를 이루어 존재하는 개체적 존재임을 의미하며, 연체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로 외적 사위기대를 이룸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개성진리체로서 자기의 생존을 유지하거나 발전하려는 개체 목적을 추구하며, 동시에 연체로서 전체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하려는 전체 목적을 추구한다.
타아주의적 참사랑은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주체와 대상으로 조화롭게 통일하여 함께 성취하는 것이다. 전체 목적을 떠나서 개체 목적이 있을 수 없고, 개체 목적을 보장하지 않는 전체 목적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모두 성취할 때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 전체를 위하는 것은 곧 상대를 위하는 참사랑이다. 전체란 개체들의 집합이며, 전체를 위하는 것이 각각의 개체들을 위하는 것이다. 나는 먼저 전체를 위하여 참사랑을 투입한다. 그런데 그 전체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전체를 위하는 것과 나를 위하는 것은 구분되지 않으며, 나와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공생·공영한다. 유기체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온전하게 존립하여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모든 구성원들도 온전히 존재하며 참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나와 너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함께 기쁠 때 전체가 기쁘다. 따라서 전체 안에서 나에게 다른 구성원들의 참사랑이 오게 되며, 서로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참사랑은 더욱 커지게 된다.
타락한 인간의 개인주의는 개체 목적을 위해 전체 목적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것을 교정하기 위한 위타주의는 전체 목적을 위해 개체 목적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아주의는 그것을 모두 넘어 연체적 유기체의 모든 구성원이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함께 달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