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동 ‘원리’ 강의소
忠峴洞 ‘原理’ 講義所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1954년 4월 입교한 양윤영의 사가(私家)로 ‘원리’ 강의소로 사용된 집.
[내용] 서울시 중구 신당 2동 377-60번지에 위치한 150평 남짓한 양윤영 교수의 사가를 ‘원리’ 강의소로 사용하면서 불린 이름이다. 양윤영은 7개월간 전도와 강의를 헌신적으로 운영하였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는 현실로 고심하였다. 참아버님과 상의한 후 1954년 10월 18일부터 서울 약수동 고갯마루에 있던 사가를 ‘원리’ 강의소로 삼고 신중하게 전도하였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출발한 북학동 세대문집과는 약 15분 거리에 있던 충현동 ‘원리’ 강의소에서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범대학가 전도의 문이 열렸다. 충현동 강의소에서 한충화, 유경규, 오승택, 황환채, 최원복, 김영운 등 원로 지도자들이 전도된 이후로 많은 식구들이 입교하게 되었다. 노동휘, 김찬균, 정찬정, 강정원, 차상순, 차만춘, 이소담, 유광렬, 이진태, 박승규, 박상래, 이월성, 김원민, 황은자, 지생련, 유동희, 염태환, 임승희, 이계순, 장진옥, 원복임, 김숙자, 김경식, 김덕진, 조동석 등 다수의 사람들이 인연되었다. 당시 협회장 유효원은 이곳에서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 ‘원리’를 강의했으며, 양윤영은 가산 전체를 바쳐 전도를 지원했다. 3개월여 만에 연탄 천 장, 장작 두 트럭분, 쌀 20여 가마니가 동이 났다. 참아버님은 “그때가 통일교회의 황금시절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놀라운 영적인 역사와 부흥이 이루어졌다.
☞ ‘양윤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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