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결혼식의 역사
祝福結婚式의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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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사탄의 혈통을 지닌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혈통을 지닌 직계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구원의식인 축복결혼식의 역사.
[내용] 축복결혼은 타락한 인간의 원죄를 청산하고 타락한 혈통을 바로잡아 인류를 구원하는 결혼의식이다. 타락한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의 실체로 완성한 참부모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되는 의식으로 사탄의 혈통을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환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질서를 회복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국가와 인종, 종교 등의 장벽을 허물고 교차·교체결혼을 통해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의 평화통일세계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초종교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축복결혼을 받은 가정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고 사랑의 상대를 통해 자녀를 낳아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세계적인 종족형 축복결혼식
최초의 축복은 1960년 4월 16일 오전 10시에 서울 청파동 전본부교회에서 거행된 3가정 성례식이다. 창조 이후 처음으로 열린 축복식이다. 3가정 성례식은 1차식 만물 복귀식과 2차식 자녀 복귀의 식, 성례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1961년 5월 15일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청파동 전본부교회에서 33가정 축복식이 1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3가정과 합하여 36가정으로 부르며 12쌍씩 아담 가정(제1이스라엘 가정), 노아 가정(제2이스라엘 가정), 야곱 가정(제3이스라엘 가정)의 세 그룹으로 구분되었다. 36가정은 신랑 신부 입장, 성혼문답, 성혼선포, 가정별 축도와 제1, 2, 3가정별 축도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축복식 후 피로연에서 신랑 신부의 탕감봉행사가 있었다. 신혼여행은 버스를 전세 내어 인천 송도와 주안을 돌아보며 기쁨과 감격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5월 18일에는 36가정 가정선서식 후 임지활동을 출발하였으며, 복귀섭리의 선구자로서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공적인 사역에 헌신하며 축복가정의 모델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1962년 6월 4일 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 24쌍씩 3차례에 걸쳐 11시간 동안 서울 청파동 전본부교회에서 72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합동결혼식위원회가 처음으로 결성되었고, 합동결혼식이라는 명칭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합동결혼식에 대한 취지서를 대외적으로 공표하기도 했다. 72가정은 36가정을 가인과 아벨의 두 형태로 나누어 세운 가정형으로 종족과 민족을 복귀한다는 의미의 가정이다.
1963년 7월 24일 오전 10시 2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서울시민회관에서 124쌍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를 10배한 120문도를 상징하는 축복결혼식이자 120개 국가를 대표하는 세계형 축복이었다. 한국인으로만 이루어진 마지막 합동축복식으로 공개적으로 개최한 첫 축복식으로 기록되었다. 축복식 후 신랑 신부들은 한 쌍씩 150대의 새나라 자동차에 분승해 서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저녁에는 공개적인 축하의 밤 행사도 진행했다.
국제합동축복식의 시대
1968년 2월 22일 오후 2시 서울시민회관에서 430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외국 가정으로 일본의 구보키 오사미 가정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축복을 받아 국제축복으로 연결하는 조건을 세웠다. 430가정은 대한민국의 4300년 역사를 탕감하고 한국의 모든 종족을 대표하는 축복가정이었다. 참부모님은 이 축복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운세가 집중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축복결혼식 이후 참석자들은 25대의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자동차로 서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다.
이후 세계 43가정 축복결혼식이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에서 나누어 진행되었고, 한국의 430가정과 세계의 43가정 축복결혼식을 연계하여 세계 축복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970년 10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777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한국 539쌍, 일본 235쌍, 유럽 16쌍 등 총 790쌍이 축복을 받아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의 위상을 갖추었다. 이들은 축복식 이후에 42대 버스에 분승하여 서울 시내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저녁에는 연예인 초청 축하의 밤을 즐겼다. 10개국이 참여한 세계형 축복이었다.
1975년 2월 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1800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한국 892쌍, 일본 811쌍, 유럽 111쌍, 중국 2쌍 등 세계 20개국의 참가자들이 총 1816쌍 축복을 받았다. 국제축복가정도 89쌍이 탄생했다. 참부모님은 1800가정 축복식이 참부모를 중심으로 축복가정을 세계 앞에 횡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축복식이라고 말씀하였다. 제3차 7년 노정을 맞이하면서 세계적 승리의 기반 위에서 전개된 세계적 축복식이었다.
이후 1977년 2월 21일 미국 뉴요커호텔에서 11개국 74쌍, 1978년 5월 21일 영국 런던 본부교회에서 118쌍 국제축복결혼식이 있었다. 1982년 7월 1일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2075쌍 축복결혼식이 개최되었는데, 48개국이 참가하였다.
1982년 10월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 20분까지 서울 잠실종합실내체육관에서는 85개국에서 참가한 6000가정 국제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한국 1천5백 쌍, 일본 3천6백 쌍, 동남아 90쌍, 미국 150쌍, 중남미 100쌍, 유럽 400쌍, 아프리카 60쌍 등 85개 국가의 선남선녀들이 참가하였다. 5천837쌍이 참가하였으나 6000가정으로 부른다.
1986년 4월 12일에는 축복가정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참부모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2세 축복결혼식이 최초로 진행되었다. 축복가정 2세 36가정 성혼식으로 불리는 이 축복결혼식은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열렸다.
1988년 10월 3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는 경기도 용인 일화연수원 공장에서 세계 17개국에서 참가한 6500가정 국제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 축복은 한국과 일본의 국제결혼이 주류를 이루었다. 교차결혼으로서 역사적인 원수관계의 담을 허물고 하나 되어 세계평화의 초석을 다지는 의미의 축복결혼식이었다. 특히 한국 신랑과 일본 신부 1천435쌍, 한국 신부와 일본 신랑 973쌍, 일본 신랑과 일본 신부 3천660쌍이 참여하여 한·일 교차결혼의 섭리로 진행되었다. 18개국에서 총 6,516쌍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을 다문화사회와 다문화국가로 만드는 선구자적 사명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통일적 기반을 상징하는 축복식이기도 하였다. 1989년 1월 11일 축복가정 2세 72가정 축복결혼식이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이어 1989년 1월 12일 1275가정 축복결혼식이 일화 용인연수원에서 있었다. 87개국에서 참가하였는데 남북미에서 820쌍, 유럽 350쌍, 아시아와 아프리카 105쌍 등이 동참하였다.
대중적이며 세계화된 축복결혼식의 시대
1992년 8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3만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거행되었으며, 세계 최초로 131개국에 위성 중계된 국제축복결혼식이었다. 축복 2세 2백 쌍, 중국 5쌍, 구소련 50여 쌍, 한국·일본 1만여 쌍, 그 외 기혼부부 등 131개 국가로부터 총 3만 625쌍을 비롯해 하객 10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합동결혼식이었다. 참부모님 성혼식 후 33년 만에 거행된 이 축복식은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의식이 거행되었고, 축복세계화의 시작과 함께 첫 위성중계의 실시가 있었다.
이 3만가정 국제합동축복결혼식에 북한의 선남선녀들도 동참해야 할 것이었지만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미 1991년 12월 6일 문선명-김일성 회담에서 1992년에 있을 3만가정 국제합동축복결혼식에 북한에서도 신랑 신부를 보내기로 했다. 예식장소를 북한 동해안의 금강산 주위의 바닷가에서 거행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남북한의 여러 정치적 상황 때문에 북한에서 참여하지는 못했다. 3만가정 축복결혼식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준도 완화되어 축복이 대중적이고 세계화되었다.
1995년 8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36만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때는 참부모님의 부모님 가정과 참아버님의 형님 가정이 축복에 동참하여 영인 축복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제2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클라이막스로 축복 2세 300쌍을 포함해 한국 2만 쌍, 일본 2만 1천 쌍, 아프리카 19만 8천 쌍, 러시아 3만 쌍, 중동 1만 쌍, 대만 1만 쌍, 북미 1만 1천 쌍, 유럽 1만 2천 쌍, 중남미 1만 5천 쌍, 오세아니아 3만 7천 쌍 등 160개 국가 553개 지역에서 미혼과 기혼가정 36만 4천 쌍이 참가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7년 11월 29일 오전 11시에는 미국 워싱턴D.C.. RFK 스타디움에서 360만가정과 3600만가정을 합한 4천만가정 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 축복식은 185개국에서 동시에 중계가 이루어졌으며, 영계축복식이 처음으로 치러져 32억 명의 영인 축복도 함께 이루어졌다.
1998년 6월 13일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는 3억 6천만 쌍 제1차 국제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5대 성인의 영인과 하늘 편과 사탄 편을 대표한 34명의 영인들이 축복을 받았으며, 92억 명의 영인들이 축복을 함께 받았다. 영육계를 연결하는 통일축복식이었으며, 가장 큰 초종파적 축복식이었다.
1999년 2월 7일에는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3억 6천만 쌍 제2차 국제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신랑 신부 1만 2천 쌍과 기혼부부 3만여 쌍, 하객 등 15만여 명이 참가하였다.
2000년 2월 13일 4억 쌍 제1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있었고, 세계 193개국에서 신랑 신부 3만 쌍, 하객 12만 명이 참석하였다. 세계 각지에서 45만 쌍이 참여하였다. 2001년 1월 27일 4억 쌍 제2차 2100쌍 축복식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거행되었다. 세계평화 구현의 상징인 유엔 건물에서 축복식이 있었다는 것은 참부모님이 주관하시는 축복결혼식이 갖는 세계평화 구현의 의미를 잘 드러낸 것이다. 2000년 5월 27일 세계종교 지도자 축복결혼식이 뉴욕 힐튼호텔에서 있었고 60쌍이 참가하였다. 특히 가톨릭의 밀링고 대주교가 참가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2월 16일 4억 쌍 제3차 축복결혼식이 서울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3천5백여 쌍의 신랑 신부와 국내외 축하객 등 1만 2천 명이 참석하였다. 2002년 4월 27일 14만 4천 쌍 성직자 축복결혼식이 워싱턴D.C. 쉐라톤내셔널호텔에서 개최되었다. 2002년 7월 3일 180만 쌍 초종교초국가축복결혼식이 워싱턴D.C. 쉐라톤내셔널호텔에서 있었으며, 185개국 주요 종교 지도자 부부 720명과 자녀들이 참석하였다. 2002년 9월 14일 초종교성직자 및 자녀 축복결혼식이 뉴욕 맨해튼센터에서 열렸으며 2천1백 쌍이 참가하였다. 2002년 12월 7일 초종교국제축복결혼식 및 종교 간 화해선포식이 워싱턴D.C. 메리어트 크리스탈 게이트웨이호텔에서 있었고 종교 지도자 등 2천5백여 명이 참석하였다.
2003년 7월 5일 초종교초국가축복식이 시카고 T.L 바렛 목사의 교회에서 있었고, 기혼 커플 1천2백 쌍, 매칭 커플 20쌍이 참석하였다. 2003년 7월 13일 4억 쌍 제4차 축복결혼식과 2004년 7월 26일 4억 쌍 제5차 축복결혼식이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있었다. 2004년 12월 26일 2세 132가정의 특별축복결혼식 이스트가든에서 진행됐다. 2005년 2월 9일 2005년 특별축복식이 천주청평수련원에서 있었고, 2세 신랑 신부 113쌍과 하객 5백여 명이 참석하였다.
2005년 8월 1일 4억 쌍 제6차 축복결혼식이 천안 유관순실내체육관에서 있었고, 미혼 신랑 신부 6백여 쌍 등 1만여 명이 참석하였다. 2005년 12월 29일 세계평화국제교차축복식이 천주청평수련원에서 있었고, 191개국 1천147쌍이 참가하였다. 2007년 2월 22일 평화세계의 실현을 위한 태평성대 평화 교차교체축복 결혼식이 천주청평수련원에서 진행됐고, 5백여 쌍이 참가하였다.
2007년 7월 5일 2007 태평성대 평화 교차교체 축복결혼식이 천안 유관순실내체육관에서 있었고 168개국에서 1천634쌍이 참가하였다.
2009년 1월 31일 평화의 왕 참부모님 구순기념 초종교교차축복결혼식이 뉴욕 맨해튼센터에서 있었고 230여 쌍이 참가하였다. 2009년 10월 14일 10·14 천주 축복결혼식이 선문대학교에서 있었고 120개국에서 축복결혼 1천923쌍, 축복가정 1만 3천860쌍이 참가하였다. 11월 16일 2세 특별축복식이 천주청평수련원에서 있었고 190쌍 신랑 신부가 동참했다.
2010년 2월 17일 천주축복식이 일산 킨텍스에서 있었고 미혼 축복 356쌍, 기성축복 4천65쌍, 하객 1만 2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2010년 10월 10일 10·14 축복식이 선문대학교에서 있었고 40개국 4천백여 쌍이 참가했으며, 2만 1천여 명의 하객이 축하하였다. 본래 참아버님의 흥남감옥에서 해방된 10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경축의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2012년 3월 24일 천지인참부모 승리해방완성개문시대 축복식이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있었고 세계 40여 개국에서 2천77쌍의 신랑 신부가 참석하였으며, 위성중계를 통해 기혼부부 1만 5천735쌍도 동참하였다.
2013년 2월 17일 2013 기원절기념 천지인참부모 천주축복결혼식이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있었고 미혼 1천여 쌍, 기성 2천5백 쌍이 참석하였다. 2013년 2월 22일 천지인참부모님 천일국 즉위식 및 축복가정의 천일국 기원절 입적축복식이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있었고 3만여 명이 참석하였다. 2014년 2월 12일 천일국 기원절 1주년 기념식 및 2014 천지인참부모 천주축복식이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있었고 2만여 명이 참석하였다.
2015년 1월 24일 천지인참부모 천주축복식이 전국 7개 교구에서 거행되었으며, 2016년 2월 20일 천일국 기원절 3주년 기념식 및 2016 천지인참부모 천주축복식이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열렸고 2만 5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후에도 매년 천지인참부모 천주축복식이 거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