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의 연못에서 피지만, 깨끗하고 순결하다.’
연은 신화나 종교와 많이 관련되어 있다.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와 그리스·로마, 이집트 신화와 관련된 얘기가 있다. 도교에서도 군자의 꽃이라 했지만, 무엇보다 불교를 상징한다.
하나의 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가장 무거운 주제인 탄생과 창조, 태양과 환생, 진리와 풍요의 아포리즘을 다양하게 함유하며 서사를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연의 몸 전체는 심한 골다공증 환자처럼 구멍이 숭숭하다.
그런데 이것이 공기의 연결통로이며 생명력의 근간이다. 우리가 취하는 연근은 실은 땅속줄기인데 거기까지 구멍이 숭숭하다. 펄 밑에서는 수평으로 자란 줄기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이어지고 마디마다 잎줄기와 꽃줄기를 독립개체로 피워 올린다.
구멍을 가늠해보기 위해 줄기를 잘라보았다. 줄기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구멍이 있어서 정작 몸체를 지탱할 조직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질긴 섬유질로 연결되어 몸체를 강하게 지탱한다. 우윳빛 진액도 배어난다.
잎줄기와 꽃줄기는 역할이 다름으로 구멍의 배열도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맞았다. 잎줄기엔 면적의 절반을 훨씬 넘는 큰 구멍 4개, 그리고 여러 크기의 작은 구멍들이 산재한다. 반면 꽃줄기엔 7개의 큰 구멍이 간격을 맞추어 원을 형성하며 원과 원 사이의 공간에 두세 개의 작은 구멍들이 배열을 이룬다. 한편 연뿌리엔 가운데 한 점을 두고 9개의 다양한 구멍이 원형으로 둘러있다.
방사상으로 뻗은 잎맥은 한군데로 모인다. 그 배꼽이 궁금해 단면을 살펴보았다. 잎맥마다 2개의 구멍이 뚫려있고 잎의 단면을 보니 더 작은 숨구멍들이 촘촘하다. 배꼽에 물방울을 떨어트려 살펴보니 기포가 올라온다.
숨쉬기다. 물은 새지 않으면서 공기만 통하는 원리도 신묘하다. 확실한 사실은 구멍들이 수많은 스토리를 생산하는 원인자라는 것. 숨구멍이며 생명의 통로이기에 물속 생존이 가능하다. 그리고 쉼 없이 지상과 교신하면서 수질을 정화하고 고인 물에 산소를 공급한다. 썩음을 방지하여 시궁창 냄새를 잡으며 선 자리를 맑게 함으로 연못의 다른 생명이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너그럽게 역할을 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상상력이 다양한 신화와 종교를 강화하는 텅 빈 충만의 진리는 그래서 다양한 서사로 전개될 수 있었으리라.
연은 몸통에 온통 구멍이 뚫려있다. 잎줄기(왼쪽)는 큰 구멍 4개가, 꽃줄기(가운데)는 7개의 큰 구멍이 주를 이룬다. 잎맥의 단면(오른쪽)에는 구멍 2개가 크다. 모두 숨구멍이다. 이를 통해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여 고인 못물이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잎의 배꼽에 물방울을 떨어트리니 숨을 쉬는 기포가 올라온다. 공기만 통하는 원리가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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