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연시 한 편이 떠오른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듸
자시난 창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조선시대 함경도의 관기인 홍랑은 북도평사 최경창과 별리의 정표로 묏버들 가지를 전했다. 이황과 두향 사이의 매화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전해오는 시조다.
어릴 적 텃밭에 얼기설기 엮은 울타리에서 유독 싹이 나는 나무가 버드나무 가지여서 신기한 적이 있었다. 대개 삽목으로 자라는 나무는 위로는 줄기, 아래로는 뿌리를 발생시키는 극성이 있으므로 거꾸로 심으면 자라지 못하는데, 버드나무는 상관이 없다. 줄기에는 뿌리가 돋는 부정근不定根 세포가 많이 잠재한다. 본체로부터 이탈되었음을 인지한 순간 플랜B가 본능적으로 발휘되어 뿌리를 내는 재생에 신속히 몰입한다.
버드나무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식물에 관해서는 셰익스피어가 ‘덕후’다. 《햄릿》에서는 오필리어가 화환을 걸려고 버드나무에 오르다가 가지가 꺾인다. 드레스가 물에 젖어 드는 중 노래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버드나무는 빨리 자라는 만큼 강도는 약하다. 그래서일까, 능동적으로 가지를 잘라내는 마법을 부린다. 나무가 자라면 아래쪽의 가지에 예비 식량을 저장한 다음 밑동의 수분을 마르게 하여 떨어뜨린다. 그 중 어느 하나쯤 강둑에 걸리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근에 수형이 닮은 버드나무가 있다면 동일한 DNA를 가진 도플갱어일 가능성이 높다.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분신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만일 그가 사람의 보호를 받는 수종이었다면 이런 본능이 남아있었을까?
1월 어느 날 갯버들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성한 잔가지가 패턴 없이 흐드러져 허리를 구부린 채로 들어가 본 숲 안. 의외로 제대로 서서 자라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칡에 억눌려 스러지거나, 새의 부리에 구멍이 나고, 도장버섯이 우산처럼 둘러쳐져 있다. 마치 전쟁터의 야전병원처럼 신음하는 나무들로 어지러웠다. 비스듬한 중간의 줄기가 위험을 감지한 탓인지 굵은 뿌리를 내리며 지탱하는 것도 보였다. 그 안에 생과 사가 얽히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아름다운 숲은 나무를 보지 못함이란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중심 줄기 없이 모여 살다가 한 몸 되어 연리목으로 둥치를 굵게 한 나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교목으로 살아남았다. 한곳에 살지만, 삶의 과정은 저리도 다르다.
버드나무는 무수한 뿌리가 힘의 원천이다. 물속에서도 썩지 않고 녹아 있는 산소까지 흡수하면서 생명을 이어간다.
급류 계곡에서 흙이나 돌들을 이리 묶고 저리 감은 뿌리 아귀는 엄청나게 세다. 특히 물가는 물이 차거나 마르는 환경의 변화가 극심한데 털보처럼 덥수룩한 실뿌리를 내어 기온의 변화를 감지하며, 호흡을 돕는다. 큰 나무는 한여름 습기가 심할 때면 두꺼운 코르크를 비집고 난데없이 줄기에서 주홍색 수염뿌리를 돋우기도 한다.
뿌리는 땅속에서만 자란다는 상식을 파괴하는 아이콘이다.
숫 버드나무의 만개. 잎보다 먼저 핀다.
버드나무는 능동적으로 가지를 잘라낸다. 이 가지가 어딘가에 정착하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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