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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도서

생애노정

평화의 어머니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 저자 한학자 총재
  • 출간일 2020년 2월 4일
  • 브랜드 김영사
  • 책분야 자서전
  • 페이지 424쪽 / 150×225mm
  • ISBN 9788934988519

종교를 넘어 국가를 넘어, 전 세계를 누비며 평화운동을 펼쳐온 

평화운동가ㆍ여성지도자 한학자 총재 자서전


“나의 길은 험난하고 절박했습니다. 

무너지는 억장을 홀로 쓸어안고 속으로만 통곡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기아, 분쟁과 고통이 사라지는 평화로운 세상,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참된 교회만을 소망했습니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봅니다.”


문선명 총재와 함께 세계 역사의 한복판에서 어려움을 넘어가며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온 한학자 총재가 처음으로 생애를 회고하면서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는 기록.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부터 문선명 총재와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미국과 남미, 아프리카에 이르는 수천 번의 행사와 수백 회의 세계순회강연까지. 남성 중심의 역사가 펼쳐졌던 세계에서 여성지도자로서 감당해야 했던 역경과 고난, 그리고 목숨을 내놓고 희생해온 사랑과 헌신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출판사 서평


저자는 1943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했다. 외할머니-어머니-딸의 세 모녀가 3대를 이어 신실한 신앙생활을 했던 어린 시절부터 하늘의 소명을 받아 참부부의 연을 맺은 문선명 총재와의 결혼,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미국과 남미, 아프리카에 이르는 수천 번의 행사와 수백 회의 세계순회강연까지. 하루도 편안히 쉬는 날이 없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초종교 초국가 평화운동을 펼쳐온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내었다. 남성 중심의 역사가 펼쳐졌던 세계에서 여성지도자로서 감당해야 했던 역경과 고난, 그리고 목숨을 내놓고 희생해온 사랑과 헌신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저자  한학자 총재


1960년 문선명 총재와 성혼 이후 휴전선 아래의 작은 마을과 외로운 섬마을부터, 바다를 건너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와 유럽, 미국, 남미,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를 순회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땅을 내 형제자매, 내 집으로 여기며 찾아 다녔습니다.


1980년대에는 종교 화해를 위한 초교파운동과 남북통일을 향한 범국민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평화를 증진시키는 운동도 펼쳤습니다. 1990년대에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역사적 만남을 갖고 냉전 시대의 동서 화해에 기여를 했습니다. 1991년 북한 땅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한 통일의 물꼬를 텄고 북한 선교의 발판도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된 2000년 이후에는 유엔까지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190개가 넘는 나라에 교회가 세워져 지구촌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식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2년 9월 문선명 총재가 성화한 후에도 이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인류를 위한 선물로 ‘선학평화상’을 제정하여 미래의 평화운동에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인종.종교.국가의 벽을 넘어 온 인류가 한 형제가 되는 참된 평화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머리말


1장 내가 바라는 평생의 소원

2장 나는 독생녀로서 이 땅에 왔습니다

3장 ‘어린양 혼인잔치’는 세계를 구원하는 등불

4장 가시밭길을 넘어, 인류의 등불이 되어

5장 심정문화는 영원한 천국의 표상입니다

6장 평화의 어머니, 동토를 넘어 세상 끝까지

7장 청춘의 아픔은 내일의 태양입니다

8장 가정은 가장 귀한 보석입니다

9장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10장 신(神)세계를 향한 위대한 도전

11장 천일국 안착을 위한 천주적 가나안 40일 노정

슬픔과 억울함을 딛고 나는 문 총재가 옥에 갇힌 13개월 동안 교회와 섭리를 이끌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식구들이 안정된 가운데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이어 가도록 했습니다. 처음 문 총재가 옥에 갇혔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과연 통일교가 존속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시야에서 사라질 것인지 비아냥거리며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몇몇 언론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섣부른 장담을 했습니다.
“통일교는 스스로 와해될 것이며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신도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p.175

나는 사나흘 동안 연습해 연설문을 모두 일본어로 준비했습니다. 일본 도쿄돔에 5만여 명이 모였습니다. 일본 수도에서 내가 처음으로 일본말로 강연을 한다고 하니 역시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집행부에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무대 옆에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간부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연단에 올라 입을 열자마자 일본 사람들은 너무 놀라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틀리겠지, 어디가 틀릴까’ 기다리다가,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할 때마다 놀라움에 사방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나는 지치지 않고 5개 도시를 순회하며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p.180

“우리 통일교회의 후임자가 누가 되어야 할지,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어요.”
갑자기 나온 ‘후임자’라는 단어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문 총재는 다시 한번 식구들을 둘러본 후 진중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없어도, 어머니만 있어도 돼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에게 ‘통일교 제2대 교주’로서 막중한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나 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독생녀이자 우주의 어머니로서 그 사명은 이미 30년 전에 주어진 것이지만, 나는 문 총재가 전면에서 섭리를 이끌어 가도록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습니다. 그날 후계자를 발표한 것은 모스크바에서 혹여 일어날지도 모를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비해 차후의 모든 일을 염두에 둔 비상조치였습니다.
p. 221

만수대의사당에서의 연설은 이제 전설이 됐습니다. 주체왕국인 북한의 심장부에서 주체사상을 비판하고 “주체사상으로는 남북한을 통일할 수 없다. 통일교가 제시하는 하늘부모님주의와 두익(頭翼)사상으로만이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되고 전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고 큰 소리로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나아가 그들의 상투어가 된 ‘한국전쟁은 북침’이라는 주장에 대해 ‘남침’이라고 정면에서 통박했습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권총을 허리에 찬 북한 경호원들이 금방이라도 총을 빼들고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우리 식구들의 손과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남편과 전 세계를 순방하며 각국 정상들을 많이 만났지만, 평양 방문 때는 정말로 비장한 각오와 심각한 결의를 다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p.230

일본과 한국이 하나 되어서 한일해저터널을 만들고, 남북이 하나 되면 그것이 유라시아를 거쳐 전 세계로 향하는 평화고속도로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현재 몇몇 강대국들이 자기네 나라의 이익만을 따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치렀지만 서로 손잡고 도버해협에 유로터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도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연다면 해저터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30년 동안 그 일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마음을 활짝 열고 미래를 가꾸어 가야 합니다.
p.216

이렇게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베링해협에 충분히 터널을 뚫을 수 있습니다. 그 비용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가 전쟁에 탕진하고 있는 돈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각 나라들이 무기를 사들이는 돈의 절반만 있어도 베링해협을 하나의 길로 이을 수 있습니다.
p.218

처음 대학교육을 시작할 무렵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학문 발전을 위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외의 유명 박사를 초빙해 자주 강연을 하도록 했습니다. 단 한 시간 강연을 위해 어떤 때는 수천만 원을 썼습니다. 학교 옆에 비행기 착륙장을 지어 아예 해외 박사를 직접 데려온다는 계획까지 세웠을 정도입니다.
p.268

한국에서 행사가 열리면 일본에서 많은 식구들이 한꺼번에 옵니다. 나는 그들이 걱정되어 늘 안부를 묻습니다. 적게는 3천 명, 많게는 6천 명이 하루이틀 간격으로 믿음의 본향 땅 청평에 오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인천으로, 김포로, 어떤 식구는 부산으로 건너와 버스로 갈아타고 청평으로 옵니다. 일본 식구들에게는 신앙의 조국인 한국을 방문해 통일교 탄생지인 부산 범냇골 성지를 비롯하여 청파동 교회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성지를 순례하며 기도를 올리는 일이 평생의 영광이자 소망입니다. 수천 명의 식구들이 믿음을 안고 한국으로 밀려오는 모습은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장관을 떠올리게 합니다.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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